時事論壇/經濟(內,外)

[동서남북] 한국, 일본型에서 아르헨티나 모델로 추락하나

바람아님 2019. 9. 25. 08:45

조선일보 2019.09.24. 03:15


내 편 네 편 가르는 진영 논리는 검증된 경제 원리 무시하는 毒
70년 포퓰리즘 아르헨티나는 20세기 경제 최대 실패 사례
나지홍 경제부 차장

요즘 경제계 인사들을 만나면 "'조국 사태'를 보면서 문재인 정부의 일방통행식 경제 운용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현장에선 위기의식을 느낄 만큼 경제가 안 좋은데, 청와대는 "소득 주도 성장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청개구리식 해석을 내놓는 이유가 궁금했었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갖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하고, 지지자들은 '조 장관님 파이팅'을 외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정부의 경제 자화자찬도 결국 지지층 결속과 반대층 무시라는 진영 논리 아닌가"라고 했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진영 논리는 경제엔 독(毒)이다. 내 편을 위해서라면 경제 원리나 원칙은 쉽게 무시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에 선진국 대열에서 탈락한 유일한 국가로 경제학계의 연구 대상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발전론의 대가 사이먼 쿠즈네츠(1901~1985년)는 이런 말을 남겼다. "세계에는 네 가지 유형의 국가가 있다. 선진국(developed)과 후진국(underdeveloped), 일본, 아르헨티나." 그의 생전에는 선진국과 후진국 격차가 '넘사벽'이었다. 한 세기 안에 이 벽을 뚫고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국가가 일본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정반대 케이스다.

100년 전 아르헨티나는 1인당 국민소득 면에서 세계 10위의 경제 부국(富國)이었다. 팜파스라 불리는 비옥한 초원에서 생산되는 대두(콩)와 밀·옥수수·쇠고기 등을 수출해 국부를 축적했다. 당시 아르헨티나 경제가 얼마나 풍족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가 외국에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엄마 찾아 3만리'다. 마르코 엄마가 가정부로 일하던 곳이 아르헨티나였다.

이랬던 아르헨티나가 지난해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570억달러를 빌리는 신세가 됐다. 그런데 처음이 아니다. 1958년 1억달러 구제금융을 시작으로 22번째다. 거의 3년에 한 번꼴이다.

외신들은 아르헨티나 몰락의 원인을 경제 원리에 역행하는 포퓰리즘에서 찾는다. 원조 격인 후안 페론 대통령은 1946년 집권 이후 지지층을 위해 급격한 임금 인상과 무상 복지 확대에 나섰다. 2003년부터 12년간 집권한 키르치네르와 부인 크리스티나는 '페론주의'를 더욱 강화했다. 실업문제 해결에 공공 부문이 앞장서야 한다며 230만명이던 공무원을 390만명으로 늘렸다. 디지털 격차를 줄이겠다며 500만대의 노트북을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했다. 모자라는 재정을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충당하느라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실정(失政)의 압권은 수출세였다. 부족한 재원 마련을 위해 콩과 밀·쇠고기 등 농축산품 수출에 최고 35%의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수출 장려를 위해 세금을 깎아주는 글로벌 추세에 역행한 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었다. 수출이 줄면서 경상수지 적자 폭이 확대됐고, 아르헨티나는 만성적인 외환 위기의 늪에 빠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공산주의권 몰락을 제외하고 20세기 경제의 최대 실패 사례는 아르헨티나"라고 전했다. 우리에겐 반면교사다. 쿠즈네츠 사후 선진국 대열에 오른 우리나라는 그의 분류법을 따를 경우 일본형이다. 하지만 임금과 복지, 공공 부문 등 아르헨티나를 빼닮은 정책을 따라가다 보면 이 분류법에 없는 새로운 유형의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롤러코스터 타듯 한 세기 안에 선진국으로 부상했다가 다시 후진국으로 추락하는 유일한 사례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나지홍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