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스님 남해 염불암 주지
내 곁을 지나간 고운 마음들…
단풍처럼 다시 가슴속 살아나
나이 드니 가을 더깊이 들어와
나무처럼 하나 둘 비워가면
내 삶이 끝나는 어느 자리서
무욕의 가벼움 만날 수 있을까
산길의 낙엽이 가을의 여운을 남긴다. 가을 속에서 나는 가을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이런 것일까.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말처럼 산길을 걸으며 나는 가을 속에서 가을을 찾는다.
가을 어느 날, 경북 상주에서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다. 새벽길 나서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내가 사는 절까지 물어물어 오셨다. 할머니는 내게 참 먼 길을 왔다고 말씀하셨다.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노구(老軀)에 새벽길을 나서 찾아오는 이 길은 얼마나 고되고 먼 길이었을까. 젊은 사람들에게는 멀지 않은 길일 수도 있겠지만, 노구의 할머니가 혼자 찾아오시기에는 이 길이 힘든 길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 길은 할머니가 마지막 오시는 길인지도 모른다. “이제 언제 다시 오겠어요.” 할머니의 말씀이 귓전을 맴돌았다.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길을 할머니는 기쁨 반 슬픔 반을 안고 오셨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내게 봉투 하나를 내미셨다. “이걸 전해 드리고 싶어 왔어요.” 순간 코끝이 찡했다. 농협 봉투에 쓰인 글귀가 눈길을 잡았다. ‘경상북도 상주에서 기차 타고 뻐스 타고 방문한 할머니 84세 건강하고 번창하시길… 작은 성의 드리려 왔습니다’. 맞춤법도 마침표도 없는 짧은 문장이었지만, 밀려오는 큰 감동으로 눈시울이 젖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그 봉투를 가지고 있다. 반으로 접힌 농협 봉투를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가끔 꺼내 본다. 그 글 행간에 남긴 할머니의 마음과 노구의 고된 여행길을. 그러면 알게 된다. 내 삶이 얼마나 지중(至重)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언젠가 도반 스님들과 중국 우타이(五臺)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문수보살님이 상주해 계신다는 중대에 오르기 위해 차를 탔다. 중대에 오르는 길 중간에서 어머니와 아이가 손을 잡고 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한 발 한 발, 그들의 걸음은 마치 기도처럼 보였다. 바람이 찬 늦가을 산허리를 그들은 추위도 잊은 채 걷고 있었다. 아이도 말없이 걸음에 집중하고 있었다. 찬찬히 그들을 살펴봤다. 티베트의 여인과 아이. 그들에게 순례는 기도였고 기도는 엄숙하고 신성했다. 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나와 이들 중 문수보살을 친견할 이가 누구일까…. 주저하지 않고 그들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문수보살님을 참배하기 위해 차를 타고 오르는 길과 한 걸음 한 걸음 기도하듯 오르는 그 길에는 얼마나 큰 마음의 차이가 있을까. 말없이 문수보살님을 친견하기 위해 걷는 그들의 걸음걸음에는 마치 연꽃이 피어날 것만 같았다.
내가 사는 산사를 새벽길에 찾아오신 노구의 할머니 마음과 그날 중대를 오르던 모자의 마음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오직 정성으로만 가득한 그 마음은 가장 순수해 내 가슴에 붉게 물든 단풍 같은 마음으로 남아 있다.
할머니가 다녀가신 그날 저녁, 산길과 접한 호수 길을 걸었다. 마침 노을을 배경으로 낙엽이 지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노을을 보면 아버지가 떠오르곤 했다. 막걸리를 한 잔 드시고 붉어진 얼굴이 마치 노을과 닮은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노을을 걸어가면 아버지와 함께 걷는 것만 같았다. 이미 부재하지만, 그는 노을이 돼 아직도 나와 함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을과 붉은 단풍과 낙엽. 인생의 전 장면을 유추하기에 충분한 소재다. 단풍처럼 생을 물들이다 노을처럼 머물다가 낙엽처럼 떠나가고 싶다. 노을의 따뜻함과 낙엽의 가벼움. 나의 노년을 그렇게 맞고 보내고만 싶다. 그래서였을까. 낙엽을 밟을 때마다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매료된다. 그 소리의 가벼움이 이렇게 매혹적으로 들리는 것은 삶이 한없이 가벼워지기를 바라는 나의 발원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무처럼 하나둘 자기를 비워가면 내 삶이 끝나는 자리에서 낙엽이 내던 소리를 나도 만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 내가 내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무욕한 존재의 가벼움을 만나는 것이다.
오래전, 이 세상을 떠나는 이에게서 보시를 받은 적이 있다. 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언니의 유언이라며 동생들이 통장과 그 통장에서 인출한 돈을 가지고 찾아왔다. 언니가 돌아가시며 스님께 전하라고 유언을 하셔서 이렇게 왔다는 동생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한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스님께서 서울까지 방송 다니시는 길 차비나 하시라고 언니가 틈틈이 조금씩 모은 돈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그의 마지막 마음이, 아직 책갈피에 끼워진 붉은 단풍잎으로 내게 남아 있다.
이제 나이가 든 것일까. 가을이 더 깊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내 곁을 지나간 고운 마음들은 가을이면 단풍잎처럼 고운 얼굴로 내 가슴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때마다 나는 맑아지는 마음의 결을 본다. 내 마음속에는 가을이면 단풍잎같이 고운 마음들이 함께 모여 아름다운 삶의 시를 쓴다. 내가 내 인생의 시에 마지막에 써야 할 말은 ‘고맙습니다’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인생이 이렇게 고마움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내 마음의 빛은 단풍을 닮은 것만 같다.
‘당신이 있어 내 마음에 노을이 삽니다. 당신이 있어 나는 햇살이, 달빛이 왜 낮은 곳을 향해 내리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당신이 있어 내 마음을 비워 바람의 이야기들로 가득 채우게 됩니다. 당신이 있어 서툰 글씨로 사랑의 일기를 씁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어 저녁 산길에 서서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단풍잎들마저 떨어져 버린 텅 빈 산길에 서서 나는 고운 마음들을 향해 합장하고 서서 ‘고맙습니다’하는 긴 인생의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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