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백영옥의 말과 글] [125] 거울이 필요한 이유

바람아님 2019. 11. 23. 09:50

(조선일보 2019.11.23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테니스 코트에서 백핸드 연습을 하는 사람을 봤다. 그는 공을 제대로 쳐내지 못했다.

자신이 공이 오는 위치보다 높은 위치에서 스윙하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왜 팔을 낮추지 못하는 걸까.

이런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팔이 높이 올라간다는 걸 '실제로' 모른다.

강연은 내게 늘 고역이었다.

3년 전, 처음 강연 코칭을 받았는데 코치는 내게 촬영한 동영상을 봐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나는 약속된 날까지 내 동영상을 보지 않았다. 내 모습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대중 앞에 섰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고질적인 문제를 비로소 '인식'할 수 있었다.


강연을 할 때 내가 사람들 눈을 '거의' 보지 않았던 것이다.

코치는 미간을 찡그리고 얘기하는 습관이 강연 내내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했을 거라고도 말했다.

강연 후 두통이 생긴다는 말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도 모르는 나쁜 습관의 악순환이 강연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이다.

나는 코칭 후, 심리적인 이유로 미간에 보톡스를 맞기로 결정했다.

또 강연용 파워포인트 자료를 바꾸고, 강연 전 리허설을 새로 설계했다.


세계 최고의 골퍼들이 여전히 코치를 고용하는 이유가 뭘까.

코치는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백핸드를 연습하던 남자가 거울로 스스로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었다면 그는 자신의 팔을 보고 실패의 원인을

깨달았을 것이다. 인식하지 못하는 걸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배움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 때도 많다는 것이다.

남자가 공을 맞히지 못하는 건 나쁜 습관 때문에 생기는 긴장 패턴의 일부다.

이때 중요한 건 '관성적으로 연습하기를 멈추고 관찰하는 것'이다.

최고의 성악가도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최고의 타자도 타격 지도를 받는다.

그때, 타인의 평가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배움의 과정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만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포함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