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11.29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나카무라 마사나오(中村正直·1832~ 1891)는 메이지 시대의 계몽 사상가다.
어려서부터 수재로 소문난 그는 31세에 막부의 유학 교육을 관장하는 자리에 오른 일류 유학자였다.
그의 배움이 무르익을 무렵 막부는 서구의 개항 압력에 직면해 있었다.
일본의 진로를 고심하던 그는 1866년 막부에 청원해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목도하고 충격을 받은 그는 1868년 귀국 후
서구 문명의 실체를 소개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첫 번째 결실이 1871년 영국 작가 새뮤얼 스마일스의 'Self help'를 번역한 '서국입지편(西國立志編)'의 출간이었다.
'자조(自助)론'으로도 알려진 이 책에서 그가 소개한 영국의 미덕(美德)은 모든 인민이 신분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성공하는 '자주지행(自主志行)'의 사회 원리였다.
영국의 강함은 용맹한 군주의 존재가 아니라 개인 간 자유의사 합의로 생성된 제도와 계약에 기인하며 관부(官府)는
민(民)에게 편의를 제공할 뿐 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민이라는 그의 관찰도 덧붙여졌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문구를 일본 사회에 각인시키며 초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개인의 주체성과
의지가 근대성의 요체임을 설파함으로써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존 스튜어트 밀의 'on Liberty'를 '자유지리(自由之理)'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해 서구 리버럴리즘의 핵심 가치인
인격의 존엄성, 개성, 자유의 개념을 일본에 소개한 것도 그였다.
그는 중국, 조선의 개화파와 교류하였으며 그가 설립한 동인사(同人社)에서 수학한 윤치호는 그의 가르침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입지(立志), 지리(之理) 등의 용어에서 볼 수 있듯 그의 서구 관념 수용은 유학자로서 소양에
바탕을 둔 것이다. 기존의 유학 지식을 낡은 틀에 가두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인 150년 전
일본 유학자의 지적 유연성이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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