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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회화 100선] [왜 名畵인가] [11] 이 속에 있었네, 열한 살의 '나'

바람아님 2014. 1. 14. 09:41

(출처-조선일보 2014.01.14 정유정 소설가)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11] 장욱진의 '가로수'

포플러 가로수길을 한 가족이 일렬로 걷는다. 턱수염 남편과 쪽머리 아내, 어린아이, 강아지와 소. 두 그루 나무 위엔 새 둥지 대신 정자와 집이 올라앉아 있다. 그 위로 저녁 해가 빨갛다. 애쓰지 않아도 이야기가 읽힌다.

한여름 저녁, 더위를 피해 산책에 나선 가족일 테다. 보이지 않는 나무 뒤편으론 물길이 흐르지 않을까. 남편의 무뚝뚝한 걸음을 따라가며 아내는 조곤조곤 말을 걸겠지. 따분한 아이는 갈등할 테고. 계속 따라 갈까. 눈치 봐서 슬쩍 새버릴까. 한바탕 싸움질을 벌인 강아지와 소는 뚱한 얼굴로 아이 뒤를 따라간다. 나무 위 집에선 '누군가' 이 행렬을 내려다본다. 그 누군가를 보려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눕혔다. 열한 살 시절의 동화가 보인다.



	장욱진의 1978년작‘가로수’, 30×40㎝.
장욱진의 1978년작‘가로수’, 30×40㎝.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소장
내 동화 속에는 소 대신 '오리알'이라 불리는 늙은 백마가 있다. 
매일 오후, 녀석은 벽돌공장 수레를 끌고 학교 앞 포플러 가로수길을 지나간다. 
나는 학교가 파하면 나무 뒤에 대기하고 있다가 말 수레에 훌쩍 올라탄다. 
마부 할아버지는 무임 승객을 타박하지 않는다. 
어차피 빈 수레고, 벽돌 공장은 우리 집 근처에 있으며, 내가 뉘 집 딸내미인지 알고 있으므로. 
책가방을 머리에 깔고 드러누우면 얼굴 위에서 수많은 것이 움직인다. 
파란 하늘, 구름, 짤랑짤랑 흔들리는 포플러 이파리, 앵앵대며 나는 파리 떼, 휙휙 허공을 가르며 파리를 쫓는 오리알의 꼬리. 
그해 늦가을 어느 날, 포플러 길에는 젊고 통통한 갈색 말이 등장했다. 
할아버지는 오리알이 죽었다고 전해주었다. 죽는다는 것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걸 알게 된 날이었다. 
하느님한테 기도해봐야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말 수레 무임승차를 졸업한 날이었다. 내 인생에서 동화가 끝난 날이었다.

나는 고개를 바로 세웠다. 
행복한 풍경에서 쓸쓸한 기억을 읽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겠다.원, 참.


작품 보려면… ▲3월 30일까지, 월요일은 휴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관람료 성인 6000원(덕수궁 입장료 1000원 포함), 초·중·고생 3000원, www.koreanpainting.kr (02)318-5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