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2020.01.24. 06:00
새해 복운 기원하며 시초점도 봐..이후 동전점 선호
조선시대 선비들의 정월 초하루나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24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설날에는 아침 일찍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친척 어른을 방문해 술을 받아 마시거나 사당에 배알하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 과음하면 제아무리 선비라 할지라도 심지(心志)를 잃고 행동이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1615년(광해군 7년) 1월2일 장흥효(張興孝)가 쓴 '경당일기(敬堂日記)'에는 '과음으로 심지(心志)를 어둡게 했고 위의(威儀)를 잃었다'고 반성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가뭄과 재해로 전염병과 굶주림이 잦았던 시기에 제수품과 세주(歲酒)를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역질이 돌아 설날 제사를 지낼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김광계(金光繼)가 쓴 '매원일기(梅園日記)'에는 '1610년(광해군 2년) 경술년 새해가 되었지만 집안에 역질이 돌아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형제들이 사당을 보며 참배만 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그렇다면 제사는 언제 지냈을까.
1733년(영조 9년) 12월30일 영남 남인을 대표하는 권상일(權相一, 1679~1759)은 정월 초하루가 아닌 설 전에 가묘(家廟)에 제사를 지냈다.
권상일은 '청대일기(淸臺日記)'에 '정성이 있으면 (제사를 받을) 귀신이 있고, 정성이 없으면 (제사를 받을) 귀신이 없다'라는 주자(朱子)의 말을 인용했다.
설날 아침에 제사를 지내면 세배 다니느라 세주(歲酒)를 마셔서 마음이 흐트러진다고 경계했다.
이 때문에 정월 초하루 제사(正朝祭祀)는 섣달 그믐에 지내고, 설날에는 아침 일찍 떡과 탕을 마련해 차례를 지내는 것이 온당하다고 했다.
제사에 무엇보다 정성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 중에는 과거 시험을 앞두거나 집안의 대소사를 치르는 중요한 시기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점을 치는 이들이 있었다.
보통은 '주역(周易)'의 괘를 맞추는 시초에 기반한 점을 쳤다.
새해 복운을 기원하며 신년 운세를 볼 때도 시초점(蓍草占)을 활용했다.
시초점은 산가지나 서죽(筮竹)으로 셈하여 치는 주역점이다.
시초점을 치려면 점을 치기 전에 명상을 하고 점을 치는 데도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이 때문에 후기에는 간단하게 동전을 던져서 점을 치는 동전점[銅錢占]을 선호했다.
1846년(헌종 12년) 서찬규(徐贊奎 1825~1905)는 정사년 설날을 맞아 매해 그러했듯이 닭이 울 무렵 조모와 부모님께 세배하고 차례를 지낸 뒤 점을 친 내용을 그의 일기 '임재일기(林齋日記)'에 적었다.
주역점의 괘는 어떻게 풀이했을까.
한국국학진흥원에는 주역괘를 그림과 해설로 쉽게 풀이해 점을 치도록 만든 '화주역(畵周易)' 2책(乾·坤)이 소장돼 있다.
이 책은 흥해배씨 임연재 종택에서 2015년 7월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자료로 이번이 외부에 첫 공개다.
책의 앞부분이 결락되고 파손이 심해 괘를 보는 법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각 면 상단에 괘명 혹은 효명을 적고 아래에 괘사 혹은 효사와 그림을 그려 점괘를 풀이해 놓았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새해를 맞아 자신과 가족,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선비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jh9326@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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