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1.29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역사를 보면 나라가 일어나기도 어렵지만 망국(亡國) 또한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군주와 보필하는 신하가 모두 암군(暗君)과 간신일 때 민심이 떠나고, 외부의 침략이 겹치면
마침내 망한다.
임금이 명군(明君) 즉 일에 밝고 사람 보는 데 밝으면 문제가 없다.
또 설사 다소 암군일지라도 자기 욕심 없이 사람만 바로 써도 나라는 굴러간다.
'논어' 헌문 편에 나오는 사례는 바로 이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자가 위(衛)나라 영공의 무도함에 대해 비판하자 계강자가 말했다.
"사정이 그러한데 어찌 그 지위를 잃지 않는가?"
공자는 말했다. "중숙어가 빈객을 다스리는 외교를 맡아 잘하고 있고 축타는 종묘를 맡아 잘하고 있고
왕손가는 군대를 맡아 잘 다스리고 있으니, 무릇 사정이 이러한데 어찌 그 지위를 잃겠습니까?"
인사만 잘한다면 설사 군주가 다소 무도하고 여색에 탐닉해도 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간사한 자에게 중책을 맡기면 그걸로 끝이다.
북송 때 임금 휘종(徽宗)이 네 차례나 재상으로 중용했던 채경(蔡京·1047~1126)이 그렇다.
채경은 처음에는 경제 실무에 밝고 통솔력도 있어서 호평받았다.
그러나 재상이 되고는 사치와 예술에 빠져 있던 휘종을 바로잡을 생각은 않고 오로지 영합(迎合)만을 일삼았다.
그저 그런 재상으로 이름 두 자 겨우 역사서 귀퉁이에 남을 뻔했던 채경이 간신으로 지목된 것은 다름 아닌
과도한 증세(增稅)로 민생을 파탄시키면서까지 휘종의 사치에 돈을 대다가 금나라의 침입까지 불러왔기 때문이다.
금나라가 침입하자 송나라는 망국 일보 직전에 놓였다.
휘종은 아들 흠종에게 자리를 물려주었고 흠종은 즉위하자마자 민심 수습을 위해 채경부터 유배 보내야 했다.
'증세 간신' 채경은 유배지 해남도로 가던 도중에 병사(病死)했다고 정사가 기록하고 있다.
야사는 가던 도중 지방관과 백성이 한마음이 돼 먹을 것을 주지 않아 굶어 죽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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