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4.29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단정한 머리'는 문명인의 표시다. 그 약속을 위한 공간이 이발소다.
신사들의 확실한 휴식처이자 동네 남자들이 모두 찾는 사랑방. 이발소는 군대와 교도소에도 있고 가끔은 유람선,
호텔, 수퍼마켓에도 설치되어 있다. 마크 트웨인의 단편소설과 찰리 채플린 코미디, 오페라의 배경이기도 하다.
서부영화나 갱스터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이발소 장면은 스토리의 흐름을 반전시키는 힌트를 주기도 한다.
이발소의 풍경은 세계 어디나 비슷하다. 인테리어는 살짝 유치한 게 기본이다.
명화를 복사한 그림과 야한 '이발소 달력', 거울 사이 선반에 정리된 면도기의 모습도 그렇다.
이발소는 정기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직접 들러야 하는 공간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방문했던 기억과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르는 경험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장소이기도 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풍기는 익숙한 비누 거품 냄새, 순서를 기다리며 신문을 읽거나 무관심하게 다른 사람 이발하는
모습을 힐끗 쳐다보는 모습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자리에 앉고 흰 천이 몸에 둘리면 헤어스타일에 관한 간단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이내 귀 뒤편에서 금속성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빗을 따라서 밀려가는 가위의 반복적인 움직임이 기분 좋아 졸음이 오는 경우도 많다.
이발 중 나누는 대화는 일상의 안부부터 가족, 직업, 시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보통 자기 머리를 자르는 이발사가 지정되어 있으므로 방문 때마다 나누는 대화에도 진전이 있다.
아무 준비나 긴장이 필요하지 않은 편안한 미팅이다.
어린 시절 이발사와 나누었던 대화가 오래 기억되기도 하고 이발사와 평생 우정을 쌓아가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익숙함과 보편적 문화가 이발소 공간의 가장 큰 매력이다. 세월이 지나면 많은 곳의 모습이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드물게 변하지 않는 이발소 풍경은 마음속의 영원한 빈티지 공간이다〈사진〉.
온라인 음식 배달, 온라인 강의, 온라인 미팅이 벌써 지겹다.
온라인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발소의 친숙한 분위기가 그립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29/20200429040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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