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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양난 호주의 고민 “현실적으로 중국 없이 살 수 있어?”

바람아님 2020. 5. 9. 08:38

[중앙일보] 2020.05.08 05:00


"호주는 항상 소란을 피운다. 중국의 신발 밑에 붙은 씹다 만 껌처럼 느껴진다." 

 

지난 3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관광객이 마스크를 쓴 채 관광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지난 3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관광객이 마스크를 쓴 채 관광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모욕적이다. 지난달 27일 중국의 민족주의 성향 매체인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장이 웨이보를 통해 날린 독설이다. 29일엔 트위터로 "(호주의) 중국에 대한 태도가 갈수록 나빠짐에 따라 중국 기업들은 결국 호주와의 협력을 줄이고 호주를 찾는 중국인 학생과 관광객도 감소할 것" 이라며 "시간이 모든 것을 증명할 것"이라고 적었다. 호주인들은 화난다.
          
[웨이보 캡처]

[웨이보 캡처]

       
청징예 호주 주재 중국 대사도 비슷한 시기 "호주 소고기, 와인의 중국 수입을 끊고, 중국인 (유)학생과 관광객이 호주 방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호주에 공개 경고했다. 
           
 청징예 주호주 중국 대사가 지난해 12월 호주 캔버라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청징예 주호주 중국 대사가 지난해 12월 호주 캔버라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국과 호주는 최근 급속히 냉각 중이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EPA=연합뉴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EPA=연합뉴스]

       
지난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 정상들과 통화를 하며 코로나19 기원을 국제 조사하자는 방안을 지지하면서 촉발됐다. 외교 문제가 불거지자 중국이 경제적 보복을 경고하며 응수한 것이다.
지난 2017년 음력 설을 맞아 온통 빨강색으로 단장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중국과 호주의 우호관계를 보여준다. [사진 셔터스톡]

지난 2017년 음력 설을 맞아 온통 빨강색으로 단장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중국과 호주의 우호관계를 보여준다. [사진 셔터스톡]

       
중국의 엄포에 호주 내에선 의견이 둘로 갈린다. 우선 더는 중국에 의존해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 돌아설 경우 호주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 의존 좀비 경제 그만”…커지는 '탈중국' 목소리

지난 1월 호주 시드니 하버 브리지 앞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마스크를 쓴 채 관광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지난 1월 호주 시드니 하버 브리지 앞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마스크를 쓴 채 관광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중국은 호주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은 호주 전체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2018~2019년 호주 전체 수출의 26%로 규모로는 2350억 달러였다. 2위인 일본이 13%로 절반에 그친다. 석탄, 철광석, 와인, 소고기, 관광, 교육 등 호주가 내세우는 대표 상품을 소비하는 큰 손이 중국이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호주에서는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른바 ‘좀비 경제론(Zombie economic idea)’이다. 국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처럼 호주 경제도 중국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는 자조 섞인 비유다.

지난 3월 호주 시드니 하버브리지 앞에서 한 여성이 마스크를 쓴 채 걷고 있다.[EPA=연합뉴스]

지난 3월 호주 시드니 하버브리지 앞에서 한 여성이 마스크를 쓴 채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더구나 지난 1~2월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이 셧다운에 들어가면서 호주 경제에 큰 어려움이 닥쳤다. 무역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호주 정계에 퍼졌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여기엔 중국이 엄포와 달리 실제 경제 보복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도 작용했다. 2018년의 경험 때문이다. 당시 중국이 정치자금을 통해 호주 내정에 간섭했다는 스캔들이 불거졌다. 호주 의회는 ‘외국 영향 투명성 제도'(Foreign Influence Transparency Scheme)’란 이름의 내정간섭 차단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외교 관계가 경색됐다.
지난 3월 호주 멜버른에서 두 여성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EPA=연합뉴스]

지난 3월 호주 멜버른에서 두 여성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EPA=연합뉴스]

       
당장 호주 경제에 큰 치명타가 될 것이란 우려가 컸지만,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다. 시드니공대 호주중국관계연구소의 제임스 로렌스슨 소장은 “당시 외교적 긴장 관계 속에서도 철광석과 석탄, 농업 부문의 대중국 수출량이 줄어들지 않았다”며 “자원 수급에 있어서 중국은 호주 외에 별다른 옵션이 없다”고 말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경제 부흥이 절실한 중국이 결국 호주에 손을 벌릴 거란 거다.
 
로렌스슨 소장은 관광과 교육 분야에서도 “중국 시민들은 신화통신이나 인민일보를 보고 자식의 진로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중국 정부가 압력을 가해도 현실적 필요 때문에 중국인들이 호주를 찾을 것이란 자신감이다. 

진짜 중국 없으면 큰일…경제계, 현실 모르는 정치권에 탄식

지난 3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관광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지난 3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관광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하지만 호주 경제계에선 두려움이 크다. 탈중국론은 사정을 모르는 소리란 거다. 현실적으로 중국을 대체할 만한 시장이 없는데 자존심을 내세우는 게 무슨 소용이란 주장이다.
 
이들은 호주 경제의 성장을 이끈 것이 중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SCMP에 따르면 지난 2018년 호주 대학에서 창출한 일자리만 25만 개다.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호주 경제의 성장에는 중국 경제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지난 2013년 호주 시드니에 있는 홀덴 자동차 대리점의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2013년 호주 시드니에 있는 홀덴 자동차 대리점의 모습. [AP=연합뉴스]

       
물론 중국 의존 구조는 문제다. 이를 탈피하려면 산업을 재구조화해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미국 GM사가 인수했던 호주 유일의 토종 자동차 브랜드 '홀덴'을 보면 안다. 얼마 전 창업 164년 만에 문을 닫았다. 한스 헨드리쉬케 시드니대 중국경영대학 교수는 "홀덴의 사례를 보면 호주에서 제조업을 재생시키는 일이 헛된 시도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헨드리쉬케 교수는 제조업으로 전환하려면 4차산업혁명에 맞는 스마트 제조업으로 변신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지만 이 역시 기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이를 위해선 또 중국이 필요하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결국 탈중국화는 정치권에서 나오는 말뿐인 구호라는 것이 호주 경제계의 탄식이다. 호주 육류 수출업자인 알프레드 정은 SCMP에 “중국에서 벗어나 시장을 다양화하자는 말은 계속 있었지만 ‘캔버라(정치권)에서만 불어오는 소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구호만 요란하지 실질적 방안은 없다는 말이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이 중국의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이들은 아직 중국보다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다. 정은 “사실 호주 농업계는 유럽과 미국, 일본에만 의존했던 것에서 중국으로 시장을 다양화한 것”이라며 “정치인들은 중국만큼 믿을만한 수익을 안겨주는 안정적 시장이 없다는 것을 간과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호주 시드니 국제공항에 도착한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이동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지난 3월 호주 시드니 국제공항에 도착한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이동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그는 오히려 중국 시장을 경쟁자에게 빼앗길까 우려했다. 그는 “호주의 작은 인구로는 급증한 육류 생산량을 소비할 수 없다” 며 “이러다 라틴아메리카 같은 경쟁자에 중국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처지. 호주와 다르지 않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왼쪽)가 지난해 9월 백악관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왼쪽)가 지난해 9월 백악관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정치·외교에선 미국, 경제에선 중국을 외면할 수 없는 점 말이다. 호주는 영연방 출신 5개국(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정보 동맹체 '파이브 아이즈' 소속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핵심 국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 회의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왼쪽)와 리커창 중국 총리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해 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 회의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왼쪽)와 리커창 중국 총리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반면 경제적으론 중국이 없으면 살아가기 어렵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전개될 ‘미·중 신냉전’에서 “우리 편에 서라”는 양국의 압박에 '진퇴양난'에 빠질 나라란 얘기다.
지난달 26일 호주 멜버른에서 한 남성이 마스크 없이 조깅하자 가로수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은 주춤하지만, 호주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계속 지켜달라고 발표했다.[EPA=연합뉴스]

지난달 26일 호주 멜버른에서 한 남성이 마스크 없이 조깅하자 가로수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은 주춤하지만, 호주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계속 지켜달라고 발표했다.[EPA=연합뉴스]

       
호주는 코로나19 사태를 지나오면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내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총리가 직접 나섰다. 그러나 전략적 고려가 떨어졌다는 비난이 나온다. '전략 없는 구호는 의미가 없다'라는 얘기다. 이래저래 고민이 깊다. 미·중 신냉전 흐름 속 선택의 압박에 직면한 한국과 동병상련이다.
 
차이나랩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사진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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