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5.19 03:12
[213] 소현세자 부부의 일생 ② 질투와 열등감의 왕, 인조
가족 복수 별러온 능양군, 권력 복귀 노리는 서인과 연합해 반정 성공
소현세자는 정묘호란 때 분조 지휘, 병자호란 후 심양 볼모… 국정 스스로 판단, 결정
권위 완전 추락한 인조, 심양시절부터 세자 감시 지시… 첫번째 귀국할 때는 공식 마중도 금지
며느리 부친상도 참석 금지, '맏며느리' 권한 가진 강빈 끝내 죽여
반정 명분이 허구임을 스스로 드러낸 패륜 군주 인조
불안에 떠는 지도자, 인조
1627년 정묘년 1월 13일 후금 기병대 3만 병력이 압록강을 건넜다. 이들이 의주성 밖에서 항복을 요구할 때 부윤 이완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 상태였다. 이순신의 조카로서, 정유재란 노량해전에서 총에 맞은 삼촌을 이어 지휘했던 용장이었다. 그 무공이 무색했다. 이완이 북을 치며 군사를 모았으나 '오랫동안 이완이 군사들로부터 마음을 잃어 적병이 강을 건너자 군사와 백성 모두 달아나고 말았다.' 이완은 분전 끝에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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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극으로 시작된 반정(反正)의 부당함을 덮지 못한 것이다. 사대(事大)를 기치로 내건 반정 지휘자는 오랑캐에게 고개를 숙였다. 더러워진 권위를 며느리 살해라는 패륜(悖倫)으로 덮으려 했다. 양대 반정 명분을 스스로 버렸다. 위세에 눌린 서인 정권은 타깃을 바꿨다. 차기 권력자, 효종이었다. 그때 강빈은 한번 더 죽어야 했다. |
〈다음 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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