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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86] 노년의 역사

바람아님 2014. 4. 14. 20:26

(출처-조선일보 2012.10.24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과거에도 노인의 수가 결코 적지는 않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노년까지 사는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이제는 어린 시절이나 중년에 죽는 것은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일이 되었다.

영국에서는 20세기 초 매년 평균 74명이 100세에 도달했지만 20세기 말이 되면 그 수가 3000명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1960년에 100세 이상 장수자가 144명뿐이었으나 1997년에는 8500명으로 늘었다. 영국의 조사를 보면 1901년 출생 시 기대수명은 남성 51세, 여성 58세였지만, 1991년에 태어난 사람의 경우 그 수치가 남성 76세, 여성 81세로 높아졌다. 므두셀라(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할아버지)처럼 969세까지 살 수야 없겠으나 평균수명 100세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갈수록 더 오래 살고, 그만큼 노인들의 수도 늘어간다. 노령자가 늘어나는 대신 젊은 사람 숫자가 줄다 보니 인구 노령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이를 국가의 쇠퇴 현상으로 받아들인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자녀 어머니를 시상하고 독신자들에게 징벌 과세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시도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노년에 대한 관념은 역사 속에서 극적으로 변했다. 서양의 경우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 말까지 노년은 단지 내세에서 보상을 위해 견뎌내야 할 비극적인 시기로 인식되었다. 18~19세기부터 이런 이미지가 완화되다가, 20세기 말에 가서야 노년은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삶의 한 단계로 보게 되었다. 물론 현대에도 늙어가는 데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없지 않다. 1970년 '노년(La vieillesse)'이라는 책을 편집한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렇게 썼다. '노인도 정말 인간인가? 우리 사회가 그들을 대하는 방식으로 판단하면 의문의 여지가 있다. 노년은 부끄러운 비밀, 금기시된 주제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모두 그처럼 노년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국에서 행한 조사에서 67세 주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에는 80세가 될 때까지는 노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나는 늙었다고 느끼지 않는다. 내 어머니는 95세인데, 최신 유행의 옷을 입는다.'

노년층의 급속한 증가를 경험하는 우리 시대에 '노년의 역사'(팻 테인 지음)는 갈수록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하여튼 기쁜 마음으로 나이를 먹고, 품위 있게 늙어가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