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2.03.1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지금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자연의 색'이라는 주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식물, 동물, 그리고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자연계의 많은 생물들은 제가끔 다양한 색을 지닌다.
현화식물의 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상당수의 동물들도 꽃 부럽지 않은 색을 뽐낸다.
동물이 색을 띠는 메커니즘 중 가장 흔한 것은 몸의 조직에 멜라닌이나 카로틴 같은 색소를 지니는
방법이다. 그러나 내가 연구하는 까치를 비롯한 까마귀류의 새들과 일부 나비 또는 딱정벌레가 보이는
금속성 색깔은 색소에 의한 게 아니라 깃털 표면의 미세구조가 빛을 반사하여 만들어내는 색이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최신호에는 1억2000만년 전 두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백악기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최신호에는 1억2000만년 전 두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백악기
숲속을 날아다니던 비둘기만한 공룡 미크로랍토르(Microraptor)의 깃털이 금속성 색깔을 띠고 있었다는 논문이 실렸다. 중국에서 발견된 날개 자국 화석을 환형의 입자가속기 싱크로트론(synchrotron)으로 분석해보니 미크로랍토르의 깃털에는 현존하는 까마귀나 까치의 깃털처럼 가늘고 긴 멜라닌소체가 촘촘히 박혀 있더라는 것이다.
멜라닌소체는 머리카락 굵기의 공간에 수백 개가 차곡차곡 쌓일 수 있는데,
그렇게 쌓이면 언제나 특정한 금속성 색을 나타낸다는 관찰 결과로부터 공룡 깃털의 색을 유추해낸 것이다.
드물지만 반딧불이나 빗해파리처럼 루시페린(luciferin)이라는 색소의 촉매작용을 이용해 자체발광을 하는 동물도 있다.
드물지만 반딧불이나 빗해파리처럼 루시페린(luciferin)이라는 색소의 촉매작용을 이용해 자체발광을 하는 동물도 있다.
그런가 하면 오징어나 카멜레온처럼 기분 상태에 따라 자기 몸의 색깔을 바꿀 줄 아는 동물도 있다. 색소세포의 수축과 이완을
통해 수시로 변색하며 포식자로부터 몸을 숨기기도 하고 암컷 앞에서 화려함을 과시하기도 한다.
지금 이 박물관에 오면 거의 360도 회전이 가능한 눈을 희번덕이며 몸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을 만날 수 있다.
색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불현듯 미국 유학 시절 잠시 나의 지도교수였던 테드 윌리엄스 선생님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진다.
색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불현듯 미국 유학 시절 잠시 나의 지도교수였던 테드 윌리엄스 선생님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게는 더할 수 없이 따뜻했지만 눈이 늘 슬퍼 보였던 그는 이른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뒤늦게 그가 완전색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자연의 색' 특별전을 마련해 놓고는 색맹인 분들에게 자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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