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23. 9. 4. 00:45
어디서 본 듯한 영화 ‘오펜하이머’
‘원폭의 아버지’ 둘러싼 색깔 논쟁
이념의 늪에 다시 빠진 한국 사회
영화 ‘오펜하이머’는 새롭고도 낯익다. 과학과 정치, 두 날개를 달았다. 오펜하이머가 책임지고 개발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지고, 일본이 마침내 항복하자 트루먼 대통령이 그를 불러 치하한다. 더 연구에 매진하라고 독려한다. 오펜하이머는 주저한다. “지금 제 손에 피가 묻은 느낌”이라고 대답한다. 트루먼이 반박한다. “누가 투하 명령을 내렸나요. 당신이 책임질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시한다. “징징대는 애들은 이 방에 들이지 마.”
영화의 원작은 2006년 퓰리처상을 받은 오펜하이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다. ‘원자폭탄의 아버지’에서 ‘반역자’로 내몰린 오펜하이머를 인류에 불을 선물한 대가로 신의 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했다. 수소폭탄에 반대한 이유로 공산주의자로 몰리고, 소련 스파이로 의심받은 오펜하이머의 청문회 장면이 얘기를 끌고 간다. 1954년 공산주의자 낙인이 찍힌 오펜하이머는 68년 만인 지난해 말에야 스파이 누명에서 벗어났다.
오펜하이머는 문제적 인간이었다. 과학자이면서도 스페인 내전의 공화파를 후원했고, 고대 인도경전 『바가바드 기타』를 산스크리트어로 읽었다. 피카소 그림을 좋아했고 T S 엘리엇의 ‘황무지’를 열독했다. 아내·동생 등이 미국 공산당에 적을 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박제된 이념에 반대했다. 영화 초반 나오는 대사 한 토막.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자유로운 사고가 필요해요. 왜 하나의 도그마에 자신을 가두려고 하죠?”
요즘 한국 사회도 때아닌 이념 전쟁으로 어지럽다. 그 발신지가 윤석열 정부의 용산이라는 점에서 당혹스럽다. 북한의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시점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경각심은 필수적이지만 홍범도 장군 등의 항일 독립운동을 소련·중국 공산당에 연결하고, 현 정부 비판 세력을 공산 전체주의로 규정하는 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다. 1970년대 반공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든다. ‘코리안 프로메테우스’라도 만들자는 것일까.
https://v.daum.net/v/20230904004531575
[박정호의 시시각각] 코리안 프로메테우스
[박정호의 시시각각] 코리안 프로메테우스
영화 ‘오펜하이머’는 새롭고도 낯익다. 과학과 정치, 두 날개를 달았다. 오펜하이머가 책임지고 개발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지고, 일본이 마침내 항복하자 트루먼 대통령이 그를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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