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23. 11. 28. 23:21
나이지리아 극작가 월레 소잉카는 세상이 몰랐으면 싶은 아프리카의 의식(儀式)이 하나 있다고 말한다. 마음을 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인간을 사냥해 사고팔던 시절에 있었던 의식이다. 베냉공화국의 우이다에는 ‘망각의 나무’라는 게 있었다. 노예들은 배에 태워지기 전에 나무 주변을 여러 번 돌아야 했다. 남자들은 아홉 번, 여자들은 일곱 번을 돌았다. 그들의 기억을 지우기 위한 일종의 주술적 의식이었다. 나이지리아의 바다그리에도 그와 흡사한 망각의 우물이 있었다. 물을 마시면 기억이 희석된다고 해서 ‘희석우물’이라 불렸다. 노예들은 배에 타기 전에 그 우물의 물을 마셔야 했다.
그 의식은 노예 상인들이 느꼈던 두려움의 반영이기도 했다. 노예들이 바다에서 죽거나 타향에서 죽게 되면 그들의 혼이 돌아와서 자신들에게 보복할 것이 두려워 그러한 의식을 거행한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면 아무리 혼이라도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
소잉카가 세상이 몰랐으면 하면서도 망각의 나무나 우물 이야기를 굳이 하는 것은 아프리카의 불편한 역사를 직시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서다. 이제는 외부의 침략자들을 향한 손가락질을, 그들의 범죄에 공모하고 동족을 팔아 부귀영화를 누려온 내부인들을 향해서도 돌릴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상처는 햇볕에 드러내지 않으면 낫지 않으니까. 이것이 어찌 아프리카만의 일이랴.
https://v.daum.net/v/20231128232109084
망각의 나무[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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