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24. 12. 18. 00:28
현대사 미스터리 될 비상계엄 사태
권력자의 인간적 요인이 제도 위협
대통령 제도에 대한 믿음까지 배신
권력 분산으로 개인 리스크 줄여야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는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 일리야 레핀이 그린 명화가 있다. ‘폭군 이반 4세와 아들 이반’이라는 1885년 작품이다. 며느리 문제로 아들과 말다툼을 벌이다 순간적 분노를 이기지 못한 차르가 아들의 머리를 부지깽이로 내리친 뒤 곧바로 후회하며 쓰러진 아들을 껴안고 절규하는 장면이다. 사흘 뒤 아들은 죽었고, 뇌제(雷帝)로 불렸던 차르도 실의 끝에 3년 뒤 세상을 떴다. 1581년 벌어진 이 사건은 결국 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권력자의 분노조절 장애가 부른, 역사상 가장 유명한 비극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현대 정치사의 가장 큰 미스터리로 기록될 만하다. 헌법상 계엄 선포 요건은 ‘전시·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다. 윤 대통령이 정국 상황을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면 며칠 뒤 담화에서 계엄을 “경고성”이라고 의미를 축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극우 세력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계산이었다는 시각도 의심스럽다.
결국 정치적 자살과도 같은 극약 처방을 쓴 것은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성정을 떼놓으면 설명하기 힘들어진다. 부정선거를 파헤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를 접수하려던 시도는 정상적 사고 능력을 의심케 한다.
한 통치자의 어이없는 행동은 선진국 문턱을 넘었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을 순식간에 45년 뒤로 되돌려 놓았다. 건국 이후 1년 정도에 불과한 내각제 실험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국민이 줄곧 지녀왔던 대통령 제도에 대한 믿음을 배신해버렸다. ‘인간’ 윤석열이 ‘대통령’ 윤석열을 쓰러트린 순간이다.
한심한 것은 이런 ‘돌출적 개인’에 여전히 포획된 여당의 모습이다. 비록 지도력의 한계를 보여주긴 했으나, 가장 먼저 계엄을 반대하고 탄핵을 주장했던 한동훈 대표를 끌어내렸다..... 이런 여당을 국민이 과연 1년쯤 지나면 다 잊어버릴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문제는 지금의 비극이 마지막이라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의 실축으로 차기 대권에 가장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는 이재명 대표도 인격·인성과 관련한 각종 구설이 따르는 게 현실이다..... 권력 분산을 통한 최고 권력자의 개인 리스크 최소화가 87년 체제 극복의 본질이다.
https://v.daum.net/v/20241218002823478
[중앙시평] 인간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을 쓰러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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