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전시·공연

베르사유宮에 우뚝 선 한국 巨匠(거장)의 자연美

바람아님 2014. 6. 25. 12:45
"와, 쇠 무지개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절대왕정의 꽃'으로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베르사유의 베르사유 궁전.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날, 수학여행 온 개구쟁이 한 무리가 고풍스러운 궁전 앞에 설치된 대형 철제 아치 아래로 뛰어들어갔다. 길이 30m, 폭 3m 스테인리스 철판을 최대 높이 12m의 반원 형태로 둥그렇게 휘어 만든 이 구조물은 궁전에서 정원으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앞에 세워졌다. 양끝엔 두루뭉술한 큰 돌덩이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관람객들은 자연스레 아치 아래 멈춰 서서 발아래 펼쳐지는 광활한 풍경을 내려다봤다.

"이만하면 됐다. 내 이름을 안다거나,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그런 건 몰라도 된다. '이게 뭐야' '희한하네' 이런 반응도 괜찮다. 사람들이 잠깐 발걸음 멈추고 궁 전체를 다시 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 그게 내 의도였으니까." 이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아치 모양의 작품 '관계항(關係項)―베르사유의 아치(Relatum―L'Arche de Versailles)'를 만든 작가 이우환(78)이었다.

 

 

한 해 관광객 1000만명이 찾는 세계적 문화유산 베르사유궁이 한국 작가 이우환의 전시장이 됐다. 2008년부터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주세페 페노네 등 해마다 세계적인 작가를 엄선해 전시를 열어온 베르사유궁은 올해 그 주인공으로 한국인으로는 처음 이우환을 선정했다. 작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베르사유궁에서 연 '아해 사진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전시다. 카트린 페가르 베르사유궁 박물관장은 "'아해 전시'는 돈 받고 대관해 주는 공간 '오랑주리'에서 열린 이벤트였을 뿐이다. 이우환 전시는 베르사유궁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매우 권위 있는 전시"라며 선을 그었다.


이우환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큰 스케일의 작업을, 이런 역사적인 공간에서 하는 건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니겠나"고 말했다. 공식 개막에 앞서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엔 기자 100여명이 참석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다음 날 이 전시 리뷰에 전면을 할애했다.

17일 공식 개막해 11월 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이우환은 작품 10개를 선보인다. 정원에 9개, 궁 안에 1개가 들어갔다. 자연, 시간을 상징하는 돌(石)과 산업사회의 상징인 철(鐵)을 이용해 문명과의 관계를 얘기하는 이우환의 조각 시리즈 '관계항(Relatum)'의 연장선에서 만든 작품이다. 숲 속, 호수 옆, 잔디밭…. 발길이 스치는 곳곳에서 만난 이우환의 작품은 베르사유궁의 기(氣)에 전혀 억눌리지 않고 오롯이 빛났다. 리처드 바인 아트인아메리카 수석 편집장은 "개체마다 독립적이면서도 놓인 환경과 매력적인 조화를 이룬다"고 호평했다. 전시를 기획한 알프레드 파크망 전 퐁피두센터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장도 "미학적, 형식적으로 베르사유궁의 풍경을 한 번에 전환한(transform) 역작"이라고 평했다.

경남 함안 출신인 이우환은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1956년 일본으로 가 니혼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60년대 말 일본에서 진보적인 미술운동인 '모노하(物派)'를 이끌었다. 현재 한국, 프랑스,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베르사유궁에서 만난 이용우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는 "선생이 2011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에 이어 잇따라 대규모 전시를 열면서 마에스트로 반열에 오르신 것 같다"며 "이번 전시는 우리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기념비적인 전시"라고 말했다.

 

 


 작가 이우환 [李禹煥]

1936. 6. 24 경남 함안~.

서양화가.

195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중퇴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61년 일본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91년에 한국·일본·유럽 등지에서 수십 차례의 개인전과 국제전에 참가했으며, 1968년 미술출판사 주최 평론 모집에서 〈사물에서 존재로〉가 당선되면서 평론작업도 병행했다. 그리고 1973~90년에 다마미술대학[多摩美術大學] 교수로 있었다. 그의 작품제작과 이론 활동은 1970년을 전후하여 일본에서 형성된 모노파(派)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모노파의 성립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 그의 미술론은 기본적으로 세계를 대상화하는 표상작용의 비판에서 시작한다. 그에게 예술작품은 '만든다'라는 창조개념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만남'을 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세계와 일체감을 지각시켜주는 구조이다. 모노파 시기의 작품 〈관계항 關係項〉 연작은 이질적인 사물들의 위치를 변경하면서 결합하는 것으로 사물의 물질적 특성이나 존재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외에 〈점에서〉·〈선에서〉 등의 평면작업과, 돌과 철판을 결합한 입체작업은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요저서로 〈만남을 구하여 出會ムお求めて〉(1971)·〈이우환 전판화(全版畵) 1970~1986〉(1986)가 있고, 화집으로 〈이우환〉(1986)·〈시간의 진동 時の震え〉(198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