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할 수 없어서 시로 적었다."
에밀리디킨슨은 생전에 시가 아니라 괴상한 행동 때문에 잘 알려져 있었다.(그녀는 평생 열 편의 시만을, 그것도
모두 익명으로 출판했다.)
그녀는 별나고 상냥한 노처녀였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마녀 같은 존재로 동네 아이들을 위해 침실 창문에서
생강빵을 줄로 매달아 내려보내던 사람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침실 안에서 달리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몰랐다.
디킨슨은 그 방 한구석의 작은 집필용 책상에서 미국인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아주 괴상한 시를 썼다.
디킨슨은 월트 휘트먼과 함께 미국 시의 양대 창시자로 꼽힌다. 그들의 시는 모두 휘트먼의 영혼이 깃든 확장과
비전된 디킨슨의 불신에 대한 황홀한 찬양에서 탄생했다.
그녀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때문에 왜곡된 이야기들이 나왔다. 디킨슨의 사망 이후 처음으로 그녀의 시들을
모아 출판했을 때, 그녀는 "선율로 이루어진 직물"을 손수 만든 견본 작품처럼 바느질해놓은 섬세하고 기이한 사람
으로 그려졌다. 사망 후 70년이 지난 1955년이 되어서야 디킨슨이 쓴 1,775편의 시를 모두 담은 정확하고 종합적인
출판본이 등장했고, 뒤이어 1961년에 대중적인 시집이 나왔으며, 1974년에 진지한 전기가 나왔다.
그 후 몇십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녀의 진정한 힘이 드디어, 그리고 갑작스럽다 할 정도로 드러났다. 이번에는
영어권의 위대한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그녀의 위상을 조정하여 디킨슨 신화가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낙태에서부터 레즈비언 애정행각에 이르기까지 부조리한 멜로드라마들을 포함해 다시 쓰였고,문화에서
그녀가 차지하는역할이 바뀌어서 이제는 반전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 개척자로 그려졌다.
하지만 디킨슨은 매번 전기 속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나 어떤 환원주의적 분류도 피해간다.
조심스럽게 관습을 따르는 동시에 강렬하게 세상을 등졌던 그녀의 인생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데이지 꽃처럼 평이하면서도 누구의 마음처럼 불가해한 그녀의 시들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디킨슨은 침실에 항상 신선한 꽃과 가족들의 초상을 두었다.

에멜리 디킨슨은 조부인 새뮤얼 파울러 디킨슨이 1813년에 지은 넓은 연방 양식 벽돌집에서1830년12월10일
태어났다. 본가의 내부 방들은 널찍하다.창문들을 둘러싼 장식적인 몰딩은 짙은 갈색으로 칠하여 꽃무늬 벽지의
분위기를 상쇄했다.
충실한 아일랜드 하인이 있었지만, 에밀리와 라비니아는 집안일을 거들고 정원에서 일하기를 좋아했다.
처음에는 에밀리 디킨슨이 오빠 부부의 집 에버그린스를 찾곤 했지만, 점점 외부에 나서기를 불안해 하고 더욱더 집
안에만 있다가 결국은 아예 집을 나서지 않으려 했고,대개는 어떤 사람과도 함께 있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디킨슨 생가의 2층 방들이 가장 흥미로운 대상이 된다.
디킨슨의 침실은 집 앞쪽에 있었는데, 한쪽으로는 메인 스트리트의 솔송나무 울타리 너머가 보이고 다른쪽은
에버그린스를 향하고 있어, 그녀가 위층에만 머물면서도 모든 것을 관찰했을 것 같다.

디킨슨의 침실에 있는 집필용 책상.
"가끔 나는 단어의 본질을 적고 그 단어의 윤곽이 그 어떤 사파 이어보다 더 빛을 발할 때까지 바라봅니다."

그녀는마치 우주의 비밀이 적힌 페이지라도 된 듯 흰옷을 입고 방
안에 머물렀다.
-시인이 1870년대 말이나 1880년대 초애 입었다고 추정되는 옷.
말년에 그녀는 흰옷만 입었는데, 점점 더 은둔생활에 빠지자
재봉사들이그녀의 옷을 여동생 라비니아에 맞추어 가봉했다.
-'걸작의 공간'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