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4년 전인 1809년 오늘 인류 역사의 향방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두 거인-링컨(Abraham
Lincoln)과 다윈(Charles Darwin)-이 태어났다.
링컨은 미국 켄터키의 통나무집에서 태어났고 다윈은 대서양 건너 영국의 슈루즈베리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모두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50대에 들어서야 이른바 '출세'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해가 그의 나이 50이 되던 1859년이었고, 링컨은 52세에 제1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사람들은 이 둘 중 누가 인류사에 더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두고 부질없는 공방을
해마다 이 무렵이면 사람들은 이 둘 중 누가 인류사에 더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두고 부질없는 공방을
벌인다. 링컨이 없었더라면 미국의 노예 해방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거나 상당히 늦어졌을 것이고,
그랬다면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링컨이 인권 평등의 역사를
바로 세웠다면, 다윈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태초에 한 생명체로부터 분화되어 나온
진화의 산물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인간이 이 세상 모든 다른 생물과 근원적으로 한가족이라는 사실처럼 우리를 철저하게
겸허하게 만드는 개념이 또 있을까? 다윈은 우리에게 생명권의 평등을 일깨워준 사상가이다.
'노예제도 철폐'는 사실 다윈의 집안사였다.
다윈의 외삼촌이자 장인인 조스 웨지우드는 영국 깃발 아래 노예를 그려 넣고 "신은 피 하나로 모든 민족을 만드셨다"는
문구를 새긴 상표를 사용했으며 반노예 단체에 기부금을 내기도 했다. 영국의 과학사학자 에이드리언 데스먼드와 제임스
무어는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그들의 공저 '다윈의 신성한 대의(Darwin's Sacred Cause)'에서 다윈의 진화 이론을
추동한 힘은 그가 비글 항해 중에 목격한 야만적인 노예제도에 대한 혐오감이었다고 주장한다. 다윈은 흑인 노예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복종하지 않으면 자식들을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주인들을 보고도 "항의 한마디 못 하는 나 자신이
어린애처럼 무력하게 느껴졌다"고 적었다.
그는 영국에 돌아오자마자 거의 곧바로 '공동 자손(common descent)'의 개념에 대해 연구하여 결국 자연선택 이론을 개발했다.
다윈의 이론은 도덕을 과학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