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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75] 인구 비례

바람아님 2014. 7. 22. 09:42

(출처-조선일보 2014.07.22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사진까까머리 중·고등학생 시절 우리는 일년에 몇 차례씩 단체로 영화 관람을 갔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본 '사운드 오브 뮤직'은 평생 내게 줄리 앤드루스라는 여인을 가슴에 품게 했고 
하릴없이 뮤지컬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벤허' '닥터 지바고' '로미오와 줄리엣' 등 명화들을 
제치고 내 기억에 그다음으로 가장 또렷이 남은 건 바로 '월드컵'이라는 영화였다. 
영국이 유일하게 우승했던 1966년 런던월드컵을 영화로 만든 것이라 바비 찰튼과 제프 허스트 등 영국 
선수들을 영웅으로 띄웠지만, 나는 오히려 독일 축구의 조직력과 베켄바워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나는 초지일관 독일의 우승을 예언했고 결국 돗자리를 깔았다. 
사실 예언이랄 것도 없다. 그냥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팀을 응원했을 뿐이다.

이번에 우리 팀은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겠지만 아쉬움이 크다. 전문가들은 심지어 국민성까지 들먹이며 우리는 개인은 탁월한데 모이면 오합지졸이 된다고 개탄한다. 과연 그럴까? 어느 나라에든 특출한 한두 명은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작은 개체군이라도 특이한 변이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축구의 경우에는 적어도 11명, 바람직하게는 23명의 김연아·양학선·이상화 같은 걸출한 변이가 필요하다.

개체군의 규모가 크면 대체로 변이의 폭도 크다. 독일 인구는 8000만명이 넘고 브라질은 2억명이 넘는다. 
프랑스·영국·이탈리아도 6000만명이 넘는다. 조만간 5000만명을 돌파할 대한민국의 축구가 인구 4000만명대의 아르헨티나·
콜롬비아·스페인 수준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마냥 억지일까? 축구 실력과 인구가 정비례하는 게 아니라면 인구가 
겨우 500만명도 안 되는 코스타리카·크로아티아·우루과이 그리고 1000만명대의 네덜란드·포르투갈·벨기에의 성공 비결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그저 "파이팅"만 부르짖지 말고 치밀하게 분석하고 기획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