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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97] 인식, 생각, 실행, 회고

바람아님 2014. 7. 18. 09:59

(출처-조선일보 2013.01.2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인간의 행동은 인식, 생각, 실행, 회고의 네 단계를 거친다. 

중추신경계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동물은 외부의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뿐 생각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런다고 인간의 모든 행동이 다 생각 단계를 밟는 것은 아니다. 숲을 거닐다 갑자기 등 뒤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을 때 자연계에서 가장 잘 발달한 대뇌를 지닌 동물답게 그 소리의 원인을 분석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소리 크기로 미뤄볼 때 그저 토끼 정도로 생각했다가 정작 곰이 덮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럴 경우 본능적으로 일단 몸을 숨기고 본다.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다. 

진화의 역사에서 때론 대뇌의 사고 단계를 생략하는 것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 과정은 돈키호테에서 햄릿까지 천차만별이다. 

우리는 생각을 깊이 하지 않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을 돈키호테라 부른다. 

하지만 산초가 말렸는데도 풍차로 돌진한 돈키호테는 생각이 부족한 게 아니라 인식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평원에 줄지어 서 있던 풍차들이 거대한 괴물들이라고 잘못 인식한 게 문제였지 기사로서 그들을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한 게 

잘못은 아니었다.

우리는 실행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대개 생각 부족에 책임을 묻지만 실제로는 어설픈 인식이 주범인 경우가 더 많다. 

우리의 뇌는 매우 정교하게 조율된 판단 기계이다. 얼마나 정확한 데이터가 입력되느냐에 따라 얼마나 훌륭한 결론이 

도출되는지가 결정된다. 1561년 오늘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태어났다. 

그에 따르면 생각이란 지식을 기반으로 한 자연스러운 귀납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힘은 일단 인식에서 비롯된다.

헌법 수호의 수장을 뽑는 과정이 엉망진창이다. 애써 천거한 후보가 이 땅의 보통 시민보다도 훨씬 자주 법의 언저리를 

위험하게 넘나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철회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얼까? 

만일 스스로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기 싫어서라면 다시 생각해보라. 이건 생각이 아니라 정보 부족으로 벌어진 일이다. 

오류의 소재를 파악하고도 바로잡지 않는다면 인간의 행동만이 유일하게 거치는 단계인 회고의 문제가 된다. 

돌이켜 생각할 줄 모른다? 이거 당최 인간 체면이 서질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