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01.14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아직 엄마 배 속에 있으면서 제왕절개 시술을 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의 손가락을 움켜쥔 태아의 사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너무나 신기해하지만, 사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빨랫줄을 쥐여주면 거뜬히
자기 몸을 지탱하며 매달린다. 하지만 일주일쯤 지나면 우리 아기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도로
무기력해진다. 잠깐이나마 이런 능력이 나타나는 이유는 아마도 그 옛날 우리 영장류 조상이 아프리카
초원에서 갑자기 위급해져 도망칠 때 새끼가 어미의 털이나 가죽을 붙들고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화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또 다른 인간 행동에 딸꾹질이 있다. 딸꾹질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급작스럽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후두 입구가 갑자기 수축하며 일어나는 생리 현상이다.
우리 귀에는 "딸꾹"이라 들리지만 서양인들에게는 "힉(hic)"처럼 들리는
소리는 그야말로 성대의 문, 즉 성문(聲門)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이다.
딸꾹질의 빈도는 나이와 반비례한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훨씬 많이 한다. 임신 8주부터 시작하는 딸꾹질은 실제로 태아가 숨쉬기 운동보다도 더 빈번하게 하는
행동이다. 그 유명한 발 달린 물고기 틱타알릭(Tiktaalik)을 발견한 시카고대의 고생물학자 슈빈은 저서 '내 안의 물고기'에서
딸꾹질은 그 옛날 우리가 뭍으로 올라오기 전 올챙이로 살던 시절에 빠끔거리며 하던 아가미 호흡의 연장이라고 설명한다.
딸꾹질도 분명 진화 과정에서 어느 순간 필요에 따라 생겨난 현상일 것 같은데, 지금은 점잖은 자리에서 우리를 민망하게
만드는 것 외에는 별다른 기능이 없어 보여 여전히 풀기 어려운 진화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기네스북에는 68년 동안 딸꾹질을 무려 4억3000만번 정도 한 미국 남성이 세계기록 보유자로 올라 있다. 1분에 거의 40번 정도
딸꾹거린 셈이다. '딸꾹질 걸(Hiccup girl)'이라는 별명을 얻은 미국 플로리다의 한 소녀는 5주 동안 매분 50번 딸꾹질을 한
걸로 유명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긴장하거나 당황하면 딸꾹질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동유럽 문화권에서는 어디선가 남이 내 얘기를 할 때 딸꾹질이 나온다고 한다.
그럴 땐 귀가 가려운 거 아닌가?
<게시자 추가 이미지 : 의사 손 움켜쥔 태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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