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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84] 기부

바람아님 2014. 9. 30. 09:05

(출처-조선일보 2014.09.30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2006년 서울대에서 이화여대로 옮기면서 나는 연구실 한 구석에 '의생학(擬生學) 연구센터'를 설립했다.
간판부터 내건 다음 이른바 '차세대 먹거리'를 찾는 기업들과 브레인스토밍, 즉 '창조적 집단 사고' 
모임을 시작했다. 혁신적 아이디어에 목말라하는 기업과 함께 생태계 섭리(eco-logic)를 터득하고 
진화의 역사를 통해 자연이 고안해낸 아이디어를 모방(biomimicry)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적이 섭섭한 일이 벌어졌다. 
2009년 모교 하버드대가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 기부금을 유치한 것이다. 
스위스 기업가 한스조르그 비스가 무려 1억2500만달러(약 1300억원)를 기부해 '비스연구소(Wyss 
Institute)'가 세워졌다. 그는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술을 개발해달라고 주문했다. 
자연을 모방하는 연구라면 내가 먼저 시작한 터라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얼마 전 이 기록이 깨졌다. 홍콩 부동산업자 챈(T H Chan)이 하버드 보건대학원에 
3억5000만달러(약 3656억원)를 내놓은 것이다. 
마침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공중위생이 더할 수 없이 중요해진 상황이라 그의 기부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모았다. 
그러나 이 또한 연구 기부금으로 세계 최고 기록은 아니다. 2010년 인도 기업가 아닐 아그라왈(Anil Agrawal)은 
10억달러(약 1조450억원)를 출연해 세계적 수준의 베단타대(Vedanta University)를 설립했다.

어느덧 기부가 문화로 자리 잡았다. 
나는 기업(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은 대학이나 연구기관 또는 학술 재단에 기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환원이면서 잘하면 기업에 도움이 되는 연구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데 그치지 말고 그들의 연구 활동까지 지원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