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물이 없어 매일 8시간씩 물을 길어 나르는 아프리카 소녀 이야기를 듣고
"생수를 사 먹으면 될 텐데" 하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
어디서든 꼭지만 틀면 나오는 수돗물은 마다하고 병에 든 물을 굳이 돈을 주고 사 먹는 게 이른바
현대인이다. 공공재이던 물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고 회수하는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시는 2004년 2월부터 수돗물에 고구려 때 한강을 부르던 이름을 붙여 '아리수'라 명명하고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155개 수질 항목에 대해 정기적 검사를
실시함은 물론, 감시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200여 항목도 수시로 검사를 해온 덕에 2009년 UN
공공 행정 서비스 대상을 받았다. 그런데도 수돗물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화여대에서도 하루에 적어도 1000병 이상 생수를 소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내가 가르치는 수업인 '환경과 인간'의 학생들이 구성한 물대책위원회가 '생생水다'라는 이름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지난해 5월 내가 가르치는 수업인 '환경과 인간'의 학생들이 구성한 물대책위원회가 '생생水다'라는 이름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이화여대 학생, 교수 그리고 여러 외국인 교환학생이 참여한 테스트에서 아리수는 총 140표를 얻어 일반 생수는
물론 고가 생수 에비앙도 누르고 당당히 1등을 했다. '셋 중에서 어느 물이 수돗물일 것 같으냐'는 추가 질문에는 상당수가 "가
장 맛이 없는 이 물이 수돗물일 것"이라고 답했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 정도가 위생을 넘어 취향에 이른 것이다.
세계적 수자원 전문가 피터 글렉(Peter Gleick)은 저서 '생수, 그 치명적 유혹'에서 생수의 취수원, 청결함, 영양가, 안전성
세계적 수자원 전문가 피터 글렉(Peter Gleick)은 저서 '생수, 그 치명적 유혹'에서 생수의 취수원, 청결함, 영양가, 안전성
문제를 조목조목 파헤친다. 물이란 모름지기 흘러야 썩지 않는다는 원리는 4대강 사업 비판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지구 저편 알프스나 피지에서 채수되어 병 속에 갇힌 채 수천㎞를 날아온 물이 과연 좋은 물일까? 병에 든 물은 이내 병든
물이 된다. 한 줌 물을 담는 데 동원되었다 버려지는 그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은 또 어찌할꼬?
그 옛날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은 그나마 부자와 양반을 골탕 먹였지만 현대 생수 산업은 생태계를 파괴하며
인류 전체를 골탕 먹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