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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83] 땅

바람아님 2014. 9. 23. 08:45
(출처-조선일보 2014.09.23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사진1992년 미국 영화 '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에는 황당한 '땅 따먹기' 장면이 나온다. 
톰 크루즈가 빌린 말을 타고 전력 질주해 도달한 곳에 말뚝을 박고 환호하는 장면 말이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이 세상천지에 어디 그런 빈 땅이 있어 그저 달려가 말뚝만 박으면 
자기 땅이 된단 말인가? 하지만 이 장면은 1893년 9월 16일 정오에 지금은 오클라호마 주가 된 
당시 체로키 인디언 지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재현한 것이다. 
무려 10만명이 참여해 2만6000k㎡의 땅을 나눠 가졌다. 
서부를 개척하기 위해 사람의 손이 절실했던 시절에 벌어진 진기한 풍경이었다.

그런가 하면 1854년 땅을 매입하겠다는 당시 프랭클린 피어스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시애틀 추장(Chief Seattle)의 답신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어떻게 하늘을, 그리고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나요?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개념입니다. 
만일 우리가 공기의 청정함과 물의 청량함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당신이 그걸 살 수 있겠습니까?"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그저 지구를 공유할 뿐입니다. 우리는 땅을 보호할 뿐 소유하지 않습니다." 
땅에 대한 북미 인디언과 유럽에서 이주해온 서구인의 생각은 이처럼 하늘과 땅이었다.

현대차 그룹이 한국전력 부지 입찰에 무려 10조5500억원을 제시하며 인수에 성공했다. 
정몽구 회장은 애당초 눈치작전일랑 염두에도 두지 않은 듯싶다. 
깃발이 내려지자마자 성큼성큼 달려가 확실한 말뚝을 박으며 다시 한 번 그의 두둑한 배짱을 과시했다. 
일단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정 회장의 주식 가치가 4000억원 가까이 줄었단다. 
평소 정 회장은 쩨쩨한 계산보다는 명분과 실리 위주로 문제를 단순화해 용단을 내리는 리더라고 들었다. 
"사기업이나 외국 기업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땅을 사는 거라 금액을 결정하는 데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국가에 기여한다고 생각해 큰 금액을 제시했다." 이거면 내게 충분하다. 
현대자동차의 화려한 부활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