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아름다운 소외

바람아님 2014. 10. 6. 20:39

(출처-조선일보 2014.10.06 이응준 소설가)


이응준 소설가 사진한 인간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감정은 무엇일까? 

특히 젊은 시절이라면? 만약 그가 예술가라면? 그

러나 그것은 굳이 청춘과 예술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삼십대 초반 일이다. 

나는 세상이 작가인 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섭섭함을 넘어선 분노에 시달리고 있었다. 

너무 어린 스무 살에 문단에 나와서 아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문학밖에는 없었고, 

문단은 나의 집이자 학교이자 직장이자 놀이터이자 병원이자 우주이자 감옥이었다. 

세상살이에 대해서는 순전히 어리석고 무능했으며 문학에는 거의 원리주의자에 가까우리만큼 

고지식해 골치 아팠다. 그런 나는 내가 목숨을 걸고 꽤 좋은 것들을 써내고 있는데도 뭔가 조직적으로 

부당하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판단에 괴로웠다.

아무리 예술이란 소인배의 영역이라지만, 그런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 심정에 좋은 일들이 깃들 리 만무했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늪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렇게 휘청거리던 어느 날의 깊은 밤, 집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다가 모로 드러누워, TV 속 음악 전문 프로그램에서 

한 여가수가 노래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리 많지 않은 팬을 거느리고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고집하는 

아티스트였는데, 문득 나는 누가 시킨 것처럼 일어나 한쪽 벽면을 꽉 채우고 있는 CD들로 다가가 소장하고 있는 

그녀의 작품들을 손으로 짚어보았다. 열한 장이나 되었다. 순간, 야릇한 깨달음에 휩싸였다. 

아, 내가 저 여가수를 지지하는 것은 그녀의 음악만이 아니라 그녀가 겪고 있는 어떤 소외까지를 함께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기사 관련 일러스트
세상의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어지는 것도 없다. 
만약 당신이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도 외로운 사람일 때, 세상 어디에선가는 그녀에게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누군가는 반드시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 
당신이 감당하는 그 소외는 당신의 권위이자, 당신이 가지고 있는 보석 중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 여가수의 음악이 세상에서 앓고 있던 그 빛나는 소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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