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1.27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서울 시내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종종 울화통이 터진다.
딱히 막힐 곳도 아니고 막힐 시간도 아니건만 졸지에 길게 늘어선 차들 꽁무니에 코를 박게 될라 치면
정말 짜증 난다. 한참을 엉금엉금 기어 사고 현장을 지나칠 무렵 기껏해야 범퍼가 약간 긁힌 정도의
사소한 접촉 사고란 걸 발견할 때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사고를 낸 두 운전자가 서로 돈 몇 푼 덜 내려고 승강이를 벌이는 바람에 아무 잘못도 없이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한 모든 운전자에게 손해배상을 하게 만드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좀 더 근원적인 해결책이 있다.
하지만 사실 좀 더 근원적인 해결책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된 미국 영화 '하우스게스트'에는 주인공이 피츠버그 길거리에
평행 주차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리 봐도 차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아니건만
그는 범퍼를 이용해 앞뒤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차례로 밀어붙이며 능숙하게 구겨 넣는다.
예전에 보스턴에 살 때 나도 즐겨 사용하던 주차 기술이다. 주차 공간이 부족한 도심에서 범퍼는 더할 수 없이
유용한 부품이었다. 옛날 차에는 대개 고무 재질의 탄력성 범퍼가 앞뒤로 붙어 있어서 주차할 때나 저속으로 운행할 때
발생하는 가벼운 충돌은 사고 축에도 끼지 못했다.
'범프(bump)'는 '부딪치다'라는 뜻의 동사고 '범퍼(bumper)'는 부딪치라고 만든 물건이다.
'범프(bump)'는 '부딪치다'라는 뜻의 동사고 '범퍼(bumper)'는 부딪치라고 만든 물건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자동차 회사들이 차체와 동일한 색의 범퍼 커버를 만들어 씌운 다음부터는 조금만 긁혀도
큰돈을 들여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
미국 CBS TV 시사 프로그램 '60 Minutes'의 독설가 앤디 루니는 "범퍼가 보호하는 것은 차와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 부품 회사"
라고 꼬집은 바 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2만달러를 주고 산 차가 큰 사고를 당해 모든 부품을 교체하여 복원하려 했더니
물경 12만5000달러가 들더란다.
범퍼만 복고해도 서울 시내 교통 체증이 확 줄어들 것이다.
접촉 사고를 낸 운전자들이 마치 유원지에서 범퍼카를 즐기는 사람들처럼 서로 웃으며 지나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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