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1.13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대학 시절 '포이에시스(Poiesis)'라는 독서 동아리를 할 때 이화여대 영문학과에 다니던 여학생이
카를 윌슨 베이커(Karle Wilson Baker)의 '아름답게 늙게 해주오(Let me grow old lovely)'라는
시를 번역해줘 모두 함께 읽은 적이 있다.
시인은 레이스, 상아, 금, 그리고 비단은 꼭 새것일 필요 없고 고목에 난 상처도 아물며
오래된 거리가 매력 있는 법인데, 우리는 왜 이들처럼 곱게 늙을 수 없느냐 묻고 있었다.
영국 리버풀대 생물학자들은 최근 이 질문을 수염고래(bowhead whale)에게 하는 게 좋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수염고래는 무려 200년이나 살면서도 노화와 관련된 질병을 거의 앓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 자란 수염고래는 몸길이가 15m에 달하며 무게는 5만㎏이 넘는다. 따라서 그들의 몸에는
우리 인간보다 무려 1000배 이상의 세포가 있다. 인간보다 훨씬 세포 수도 많고 오래 사는 고래가 암에 걸릴 확률이
당연히 더 높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무얼 의미하는가? 그들에게 강력한 '항암 유전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리버풀대 연구진은 수염고래의 유전자들을 쥐에게 이식한 다음 노화 속도와 암 발병 여부를 관찰하는
실험을 기획하고 있단다.
노화 현상 중에는 모든 동물에게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종에 따라 특이하게 발생하는 것도 많다.
노화 현상 중에는 모든 동물에게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종에 따라 특이하게 발생하는 것도 많다.
늙은 말은 종종 창자가 꼬여 죽지만 인간에게는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
새는 인간보다 체온이 6~7배나 낮고 훨씬 많은 산소를 소모하며 사는데도 산화로 인한 손상이 거의 없다.
개와 사람은 전립선암에 걸리지만 쥐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세계 거의 모든 의학연구소에서는 여전히 쥐를 대상으로
노화와 질병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쥐의 암 발생을 연구하여 많은 걸 배운 건 사실이지만,
쥐에 비해 훨씬 탁월한 저항력을 가진 인간의 암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을 찾으려면 쥐가 아니라 고래나 새를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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