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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97] 생명 사랑, 다양성, 창발, 멋

바람아님 2015. 1. 1. 22:07

(출처-조선일보 2014.12.31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팔자에 없던 기관장이 돼 일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자연환경 보전과 생태 문화 확산을 도모해 지속 가능한 미래 구현에 기여한다'는 
비전과 함께 '생명 사랑, 다양성, 창발, 멋'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숨 가쁘게 달려온 1년이었다. 
특히 우리가 선정한 핵심 가치는 단지 국립생태원에만 유효한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공유해도 좋을 듯해 소개해 보련다.

올해 우리는 '생명 사랑' 정신의 부재로 꿈에도 잊지 못할 아픔을 겪었다. 
세월호 침몰은 승객 안전을 최우선 핵심 가치로 삼아 마땅한 한 업체의 생명 경시 때문에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생명 탄생은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한 확률의 기적이요, 
종교적으로는 한없는 신의 축복이다. 
이처럼 고귀한 생명을 부여받았다면 모름지기 다른 생명을 사랑할 의무가 있다.

생태학은 한마디로 '다양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엄청난 생물 다양성이 어떻게 진화해 공존하고 있는가를 과학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하기 위해 국립생태원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재들이 모였다. 정부기관, 민간기업, 시민단체, 학계 등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균일 집단의 일사불란보다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창발(創發)' 효과에 훨씬 
큰 기대를 건다. 하위 수준에는 없던 속성이 그들이 모여 상위 계층을 이루면서 새롭게 출현한다는 
'창발'은 내가 10년 전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진 '통섭'의 개념과 맥을 같이한다.

끝으로 '멋'은 그 뜻을 정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말이다. 
'멋'은 감각적 개념의 '맛'을 감성적으로 표현한 말로서 됨됨이나 행동의 품격이 세련되고 여유로움을 뜻한다.
5000년 역사를 통틀어 단 한 번도 부유해 본 적 없지만 우리는 멋을 아는 민족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돈 몇 푼을 탐하느라 멋을 잃었다. 
새해 우리 국립생태원은 다양함을 창발로 승화시키며 '생명 사랑' 정신을 온 누리에 되살리는 '멋'진 기관으로 우뚝 서리라. 
우리 사회도 덩달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