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2.09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미국 유학 시절에 만나 짧은 연애 기간을 거쳐 결혼한 우리 부부는 신혼 때
서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눴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에 대해 깊이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 셈이다.
어느 날 아내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동요가 무엇이냐 물었다.
나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이라고 답했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동심을 어루만지고자 1956년 당시 서울중앙방송국이 벌인 '밝고 아름다운
노래 부르기' 캠페인에서 선정한 동요다. 아내는 내게 그 노래가 '4분의 3박자, 바장조'라고
가르쳐주며 내가 밝은 노래를 좋아한다고 반가워했다.
그러나 훗날 아들이 태어났을 때 내가 그 녀석을 안고 '섬집 아기'를 부르자
아내는 아기에게 왜 그렇게 슬픈 노래를 자장가로 불러주느냐며 펄쩍 뛰었다.
나는 세상에서 내가 둘째로 좋아하는 동요라고 항변하며 아내 몰래 아들에게 종종 들려주었다.
'섬집 아기'를 자장가로 부르는 부모는 나뿐이 아니다.
하지만 이 노래를 자장가로 들려주면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눈물까지 흘리는 아기 역시 적지 않다고 한다.
같은 바장조의 두 노래가 어쩌면 이리도 느낌이 다를 수 있는지 설명을 듣고 나도 여전히 신기하다.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의 작곡가 한용희 선생이 지난 5일 83세로 별세했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가 폭넓게 사랑받은 데에는 수려한 작곡 못지않게
아동문학가 어효선 선생의 가사도 한몫했다.
그저 1절만 기억하는 다른 많은 노래와 달리 이 노래는 누구나 대개 2절까지 내리 부른다.
1절과 2절의 가사가 파랗고 하얀 차이 외에 그저 '여름'과 '겨울', '나무'와 '지붕', '파아란 하늘'과 '깨끗한 마음'이 다를 뿐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에는 지금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지붕 위로 '파아란 하늘'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파란 여름과 하얀 겨울이 함께 찾아온 듯한 착각이 마냥 흥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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