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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93] 이반 일리치의 '죽음'

바람아님 2014. 12. 2. 11:09

(출처-조선일보 2014.12.02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사진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Ivan Ilyich)의 죽음'에는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살다가 
대수롭지 않은 옆구리 부상으로 인해 급격하게 죽음을 맞는 한 중년 남자의 삶이 그려져 있다. 
참으로 을씨년스럽고 덧없는 삶이다. 
하지만 이른바 '물수능' 급류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요즘 우리 아이들의 삶도 덧없기는 마찬가지다. 
오늘은 12년 전 이 소설 주인공 이름과 우리말 발음이 거의 같은, 
우리 시대 가장 논쟁적인 사상가 이반 일리치(Ivan Illich)가 사망한 날이다. 
수능 문제 단 하나에 삶의 격이 달라지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나는 얼마 전 
그의 '학교 없는 사회'를 다시 읽어보았다. 제대로 된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점수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서 사랑받아야 하건만 수능 따위가 어쭙잖게 '전 국민 줄세우기'를 하고 있다.

일리치(Ivan Illich)는 특이하게도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은 사상가다. 
철학, 사회학, 역사학은 물론 종교학, 언어학, 여성학, 의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학문 분야에 두루 탁월한 업적을 
남겼건만, 해방신학자, 환경운동가, 무정부주의자들의 정신적 지주로 떠오르며 급진적 몽상가로 내몰렸다. 
평생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데 천착했건만 그의 대표 저서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때문인지 다른 편에서는 
그를 엉뚱하게도 '좌파 지식인을 향해 지적 폭력을 퍼붓는 보수주의자'로 몰아세운다. 
12세기 사회와 사상을 탐구하며 현재를 이해하려면 과거로 돌아가 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한 그가 보수적이라면 
진화를 연구하는 나는 보수주의자의 전형일 수밖에 없다. 
현재는 오로지 과거의 관성으로 나타나는 찰나일 뿐인데.

일찌감치 아이들을 문과와 이과로 나눠놓고 모자라는 부분을 가르쳐주기는커녕 피해가라고 요령만 훈련하는 
우리 교육의 작태를 보며 일찍이 교육이 "결핍을 가르치는 것으로 타락했다"는 일리치(Ivan Illich)의 일침을 떠올린다. 
그는 우리에게 '공용(公用)의 가치'를 일깨웠다. 
문명의 '목발'이 부러져 나가기 전에 그가 부르짖은 '생태학적 현실주의'를 제대로 품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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