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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91] 공회전

바람아님 2014. 11. 18. 09:39

(출처-조선일보 2014.11.18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사진요즘 하늘은 참 청아하게 맑은데 길을 걷다 보면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날이 쌀쌀해지자 차 안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하려는 운전자들이 공회전(空回轉)을 부쩍 많이 하기 
시작했다. 공회전으로 차량 연료의 10~15%가 낭비된다고 한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로서는 
각별히 신경 써야 할 듯싶은데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대체로 무심하다. 차량 냉난방 때문이 
아니더라도 단순히 시동을 끄고 켜기 귀찮아 그냥 내버려두는 운전자가 적지 않다.

일본 요코하마대에 초청돼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도쿄에서 고속철을 타고 요코하마 역에 내렸더니 
그 대학 교수 한 사람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의 차를 타고 대학까지 가는 도중 신호등에 걸려 멈출 
때마다 그는 어김없이 차 시동을 끄고 기다렸다. 
요코하마는 유달리 언덕이 많은 도시라서 여러 차례 상당히 가파른 비탈길에 거꾸로 매달린 
지경이었건만 그는 단 한 번도 시동을 껐다 켜는 수고스러움을 거르지 않았다. 
시동을 켤 때마다 과도하게 많은 연료가 주입돼 오히려 낭비가 아닌가 물었더니 일본에서 실시된 여러 실험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단다.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많은 유럽 자동차들은 신호에 멈춰 서면 자동으로 시동이 꺼졌다가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다시 시동이 걸린다. 국내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이런 장치를 장착한 차량을 시판했지만 
판매 확대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차로가 여럿인 대로(大路)일수록 신호 대기 시간도 길고 대기하는 자동차도 많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김없이 긴 횡단보도가 있다.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이 내뿜는 미세 먼지가 보행자들 코를 통해 폐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싶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에는 연비 정보를 세심하게 따지면서 정작 운전할 때에는 지극히 대범해지는 게 이 땅의 운전자들이다.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너그러운 대범함이 미덕인 문화이긴 하지만 환경 문제에는 조금 옹졸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