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20>소요정(逍遙亭) (출처-동아일보 2002-08-22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소요정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 탑산 남쪽 기슭에 있던 정자인데 고종 28년(1891)에 편찬된 ‘양천현읍지’에 이미 터만 남아 있는 것으로 돼 있다. 겸재가 영조 18년(1742)에 그렸으리라 생각되는 이 ‘소요정’에도 정자의 모습은 없다. ..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09.13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19>개화사(開花寺) (출처-동아일보 2002-08-15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현재 서울 강서구 개화동 332의 12에 있는 개화산 약사사의 겸재 당시 모습이다. 그때는 주룡산(駐龍山) 개화사(開花寺)라 했기 때문에 개화사로 그림 제목을 삼았을 것이다. 주룡산은 안산의 수리산과 인천의 소래산 줄기가 뻗어 나와..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09.12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18>양천현아 (출처-동아일보 2002-08-08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겸재가 영조 16년(1740) 초가을 양천현령으로 부임할 당시 양천현 관아의 모습이다. 양천읍지에 ‘동헌 종해헌(宗海軒)이 건좌손향(乾坐巽向·서북쪽에 앉아서 동남쪽을 바라봄)’이라고 기록돼 있어 현아 전체의 좌향(坐向·명당이 ..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09.11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17)소악후월(小岳候月) (출처-동아일보 2002-08-01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소악후월(小岳候月)은 소악루에서 달뜨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겸재가 이런 제목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동복현감을 지내다 스스로 물러나 소악루 주인이 된 이유(李a·1675∼1757)는 겸재보다 한 살 위..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09.10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16>소악루(小岳樓) (출처-동아일보 2002-07-25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소악루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 성산 동쪽 기슭에 있던 누각이다. 전라도동복(同福) 현감을 지낸 소와 이유(笑窩 李유·1675∼1753)가 영조 13년(1737)에 자신의 집 뒷동산 남쪽 기슭에 지은 것이다. 한강의 강폭이 넓어져 서호(西湖) 또는 ..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09.09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⑭]안현석봉(鞍峴夕烽) (출처-동아일보 2002-07-11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안현(鞍峴)은 안산(鞍山) 또는 모악산(母岳山)이라 부르는 서울의 서쪽 산이다. 봉원사(奉元寺)와 연세대 및 이화여대를 품고 있는 높이 296m의 산이다. 한양의 내백호(內白虎·명당의 서쪽을 막아주는 안쪽 산줄기)인 인왕산에서 서쪽..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09.08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⑬…목멱조돈(木覔朝暾) (출처-동아일보 2002-07-04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목멱산(木覔山)은 서울 남산의 다른 이름이다. 남쪽 산을 뜻하는 순 우리말 ‘마뫼’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이라 한다. ‘마뫼’는 마산(馬山) 또는 마시산(馬尸山) 등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이로써 동방 청룡(靑龍), 서방 백호(..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09.06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⑫…금성평사(錦城平沙·금성의 모래펄) (출처-동아일보 2002-06-27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상암 월드컵경기장과 월드컵공원 등이 들어선 난지도(蘭芝島) 일대의 262년 전 모습이다. 원래 이곳은 모래내와 홍제천, 불광천이 물머리를 맞대고 들어오는 드넓은 저지대라서 한강 폭이 호수처럼 넓어지므로 ‘서호(西湖)’라는 별..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