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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덜어내야 채워지는 삶

바람아님 2015. 5. 22. 08:31

(출처-조선일보 2015.05.22 임병희 목수·'목수의 인문학' 저자)


	임병희 목수·'목수의 인문학' 저자 사진

탁자의 다리를 둥글게 깎고 싶어서 대패질을 시작했다. 

하염없이 대패를 움직이는 동안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것이 '무념무상(無念無想)'일까? 마치 도를 닦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닥에 대팻밥이 수북이 쌓였지만 아직 깎아내야 할 부분이 더 많았다.

나무는 깎이며 사람이 원하는 모양으로 변해간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조각에 대해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덜어내면 줄어들어야 하는데, 대패질이나 조각은 정반대이다. 

덜어낸다는 것은 곧 완성으로 채워나가는 과정이 된다. 

이것이 법정 스님이 이야기한 '무소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소유를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미켈란젤로가 불필요한 부분을 떼어낸 것처럼, 그리고 탁자의 다리를 완성하기 위해 나무를 깎아내는 과정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을 남기는 것이 무소유라고 생각한다.


	일사일언 칼럼 관련 일러스트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은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없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채운다는 것은 무언가가 끊임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족함이 아니라 덜어내어야 채워지는 삶을 생각해본다. 
세상은 우리가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덜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칭기즈칸의 책사(策士)로 몽골 제국의 토대를 놓은 야율초재(耶律楚材)는 이런 말을 했다. 
'하나의 이익을 더 하는 것은 하나의 해를 제거하는 것만 못하고(與一利不若除一害·여일리불약제일해),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生一事不若滅一事·생일사불약멸일사).'

많은 것을 가지려 하면 많은 것에 얽매이게 된다. 
많은 일을 벌이면 그만큼 집중도가 떨어진다. 
몸과 마음을 간결하게 하면 내가 원하는 그곳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게 덜어낼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