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6.16 이영완 산업2부 과학팀장)
야자 수액 와인 즐기는 침팬지, 飮酒가 진화의 산물이란 증거
잘 익은 과일 속 맛들인 알코올… 1000만년 전 분해 효소 발달
인간과 달리 자연서 만취 안 해… 돼지도 취해 서열 깨지면 禁酒
- 이영완 산업2부 과학팀장
서아프리카 기니 사람들은 야자나무에 상처를 내고 흘러나오는 수액을 플라스틱 통에 받는다.
술 마시는 침팬지는 이른바 '취한 원숭이 가설(Drunken Monkey Hypothesis)'의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지난 1월 미국 산타페대 매튜 캐리건 박사 연구진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더들리 교수의 주장을 입증한
유전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28종의 포유류를 대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ADH4)'의 돌연변이를 조사했다.
같은 효소라도 진화 과정에서 조금씩 돌연변이가 생긴다.
그리고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속도는 일정하다.
현재 동물들의 돌연변이 정도와 이 동물들의 진화 과정을 연결하면 알코올 분해 효소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 수 있다.
분석 결과, 1000만년 전 인간의 먼 조상에게서 갑자기 알코올 분해 능력이 생겨났다.
오늘날 알코올 분해 능력이 없는 오랑우탄의 조상은 이때 인간의 조상과 갈라졌다.
연구진은 알코올 분해 효소가 등장한 것은 지구 기온이 떨어지면서 인간의 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온 시기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바로 잘 익은 과일을 찾던 때이다.
우리나라나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인들은 술을 마시면 얼굴이 붉어진다.
흔히 알코올 분해 효소가 부족해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알코올 분해 능력은 동아시아인이 백인을 능가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알코올이 1차로 분해되면 아세트알데하이드란 독성(毒性) 물질이 나온다.
남보다 알코올을 잘 분해하면 그만큼 아세트알데하이드도 많이 나온다.
동아시아인은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 효소(ALDH)'의 능력이 떨어진다.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축적되면 염증 반응처럼 히스타민이란 물질이 분비돼 면역세포를 불러 모은다.
이 과정에서 혈관이 확장돼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가려워진다.
그렇다면 왜 동아시아인들의 알코올 분해 능력이 남다른 것일까.
2010년 중국 과학자들은 중국 내 38개 민족 2275명의 알코올 분해 효소를 분석했다.
남들보다 월등히 알코올을 잘 분해하는 돌연변이 효소는 중국 남동부 사람들에게 흔하고,
북부와 서부로 갈수록 그 수가 줄었다.
이런 돌연변이는 지금부터 7000~1만년 전에 등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시기는 중국 남동부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8000~1만2000년 전과 겹친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술을 빚게 됐고, 남다른 알코올 분해 능력도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술은 진화가 빚은 인간의 벗인 셈이다. 그렇다고 술을 마시고 정신을 놓는 것까지 용서되지는 않는다.
영국 설포드대의 로버트 존 영 교수는 "술을 즐기는 동물들은 스스로 선(線)을 지킨다"고 말했다.
이는 1970년대 돼지 실험에서 잘 드러났다. 과학자들은 돼지들에게 하루에 세 번 술을 먹였다.
돼지무리에서는 서열에 따라 먹이를 먹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술은 모든 걸 뒤집었다.
만취한 서열 3위 돼지가 서열 1위 돼지 자리로 가서 먹이를 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서열 1위부터 차례대로 술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술을 계속 먹는 돼지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는 서열 꼴찌뿐이었다.
야자수 수액으로 만든 술을 즐기던 침팬지 중에서도 선을 넘은 침팬지는 단 한 마리였다고 한다.
남들이 다 잘 때 이 침팬지만 이 나무 저 나무를 헤매고 다녔다.
결국 술에 취해 이성을 잃으면 짐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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