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기자의 시각] 조국을 떠난 일론 머스크

바람아님 2015. 12. 24. 09:29

[기자의 시각] 조국을 떠난 일론 머스크

(출처-조선일보 2015.12.24 손진석 국제부 기자)

손진석 국제부 기자세계적 미래학자 돈 탭스콧은 현대사회의 가장 위대한 CEO로 일론 머스크(Musk)를 꼽는다. 
혁신 제품으로 거대 기업을 세운 사업가는 여럿이지만, 
누가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지까지 따지면 머스크가 으뜸이라는 것이다. 
머스크는 과학적 상상을 현실로 불러온다. 전자 금융거래에 첫발을 내디뎠고(페이팔 설립), 
장난감 취급을 받던 전기차를 상용화된 고급 차로 변신시켰다(테슬라 설립). 
그가 세운 솔라시티는 태양에너지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고, 
스페이스엑스라는 기업은 민간 우주왕복선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머스크의 활동 무대는 미국 캘리포니아다. 하지만 원래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이다. 
태어나 고교를 마칠 때까지 남아공에서 자랐다. 
그런데 머스크는 남아공에서 보낸 18년이 썩 좋은 기억은 아니라고 말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독학으로 익힌 머스크는 열두 살에 비디오 게임을 만들어 판 천재였다. 
하지만 남아공의 초중고는 그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준이 되지 못했다. 
학사 관리가 엉망인 남아공에는 월급만 챙기고 출근조차 하지 않는 교사가 많다. 
올해 OECD가 주요 76국 학생들의 수학·과학 성적을 비교했더니 남아공이 75위였다. 
문제는 교과 수준이 낮은 데 그치지 않는다. 
머스크는 급우들에게 툭하면 얻어맞고 입원을 반복한 학교 폭력 피해자였다. 
하지만 학교와 교사들은 그를 보호하지 못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잘난 체하는 놈(smart aleck)으로 통했고 흠씬 두들겨 맞았다. 
외로움을 이기려고 공상과학 소설을 읽었다"고 했다.

머스크는 남아공 탈출을 꿈꿨고,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타고난 재능이 만개했다. 
2002년 머스크는 서른한 살에 페이팔을 이베이에 팔아 1900억원을 손에 쥐었고, 이해에 미국 국적도 얻었다. 
머스크는 계속 미국에서 사업을 일궜고, 그가 창출한 막대한 부가가치와 일자리는 미국인들이 나눠 갖고 있다.

머스크가 미래 산업의 선구자로 명성을 떨치자 남아공에서는 "머스크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며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짝사랑이다. 
머스크는 남아공과 관련한 질문을 받으면 대개 "학창 시절에 힘들었다"며 떨떠름하게 대답한다. 
고국 사람들이 들으면 뿌듯해할 만한 의례적 '립서비스'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머스크가 남아공에 남아 있었다면 오늘날의 (성공한) 머스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남아공보다는 훨씬 훌륭한 교육 체계와 산업 인프라를 갖춘 나라다. 그러나 자문해봐야 한다. 
머스크 같은 천재가 우리에게 있다면 그가 나라에 실망하지 않고 긍정적인 젊은 이로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우리 품 안에서 성공하게 해서 이 땅에서 부(富)를 거머쥐고 미래를 설계하도록 키워낼 수 있을까? 
특출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발굴하고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가 기르지 못한 천재가 외국에서 능력을 꽃피울 때 "저 사람은 한국인"이라며 뒤늦게 떠드는 건 허망한 일이다. 
천재를 키우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