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연을 전해준 교수는 “오죽하면”이라며, 엄마가 딱하다고 했다. 나는 그 학생이, 아니 ‘엄마주도학습’으로 커왔을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딱했다. 인생 진로를 가를 수도 있는 중요한 수업의 성적 관리를 왜 진작에 제대로 안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20대를 훌쩍 넘긴 나이의 자식 대학 성적표를 보고 한걸음에 학교에 달려와 교수 앞에 무릎을 꿇는 엄마라니.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어엿한 성인인 20대 자식을 마치 밥까지 떠먹여 주는 듯한 부모들의 과보호야말로 오히려 자기 자식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회를 뺏는다는 걸 모르는 걸까. 20대 나이에 스스로 해야 할 최소한의 경험조차 이렇게 박탈하면 사회에 나가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할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원래 20대가 이렇게 보호받아야 할 미숙한 나이인가 하고 잠시 생각해봤다. 그건 아닌 것 같다. 1968년 건축가 김수근(1931~86) 아래서 서울 여의도 개발을 주도한 팀의 평균연령이 27세였다. 팀 일원이었던 건축가 김석철은 당시 25세에 불과했다. 물론 당시는 전후 급격한 산업화가 이뤄지던 시기라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식이나 기술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가 드물었고, 그 덕분에 젊은 층에게 기회가 많이 돌아가기도 했다. 다들 천재 소리 듣던 인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꼭 천재가 아니더라도 집에서나 집 밖에서나 20대를 어른 대접 해줬고, 20대는 그 시대와 나이에 맞게 주어진 일을 훌륭히 해냈다. 그렇게 쌓은 경험으로 나이를 먹어 더 큰일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20대는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간다. 취업난이다 뭐다 해서 사회에서 기회를 못 얻는 건 또 다른 얘기다. 집에서부터 지금이라도 20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부모들이 손을 놓아주는 게 우선이 아닐까.
안혜리 뉴디지털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