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4.12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나는 지금 국제 학술지 6곳에 편집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거의 매주 투고 논문을 검토하고 적절한 논평자를 물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아직은 무료 논평이 학계의 관행이지만 날이 갈수록 논평자를 모시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포유동물에 관한 논문이 들어오면 솔직히 난감하다. 세계적으로 포유류학자의 씨가 마르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포유동물의 씨 자체가 마르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파나마 스미스소니언 열대연구소에 있을 때 재규어 표범을 연구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1년 내내 재규어 실물은 단 한 차례도 보지 못한 채 매일 재규어 똥만 주우러 다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친구를 포유류학자가 아니라 분변학자라고 놀렸다.
인간의 분변은 냄새와 촉감에서 특별히 역겨운 편이라,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 생물학자들은 숲이나 들에서 발견하는
인간의 분변은 냄새와 촉감에서 특별히 역겨운 편이라,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 생물학자들은 숲이나 들에서 발견하는
동물의 똥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찬찬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종종 기꺼이 냄새도 맡는다.
동물의 분변에는 채 소화되지 않은 식물 씨앗이나 동물 뼈가 들어 있다.
그것들을 분석하면 그 동물의 행동과 생태를 상당 부분 재구성할 수 있다.
최근 캐나다와 아일랜드의 분변학자들이 기원전 3세기 한니발 장군이 로마를 공략한 경로를 밝혀냈다.
최근 캐나다와 아일랜드의 분변학자들이 기원전 3세기 한니발 장군이 로마를 공략한 경로를 밝혀냈다.
카르타고가 해상으로 공격해올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던 로마의 허를 찌르려고 한니발 장군은 코끼리 37마리,
말과 나귀 1만5000여 마리를 거느리고 해발 3000m나 되는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는 전(前) 영국자연사박물관장
개빈 드 비어 경의 주장이 옳았다.
연구진은 그 고산지대에서 기원전 218년으로 추정되며 주로 동물 분변으로 이뤄진 1m 두께 충적토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말의 분변에서 발견되는, 미생물 군집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토양 환경에서 수천 년 동안 안정적으로
생존하는 클로스트리디아(Chlostridia)라는 박테리아를 추출해냈다.
똥 연구는 의학과 생태학은 물론 역사학에도 기여한다.
'其他 > 최재천의자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64] 삼팔이의 출산 소식 (0) | 2016.04.26 |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63] 지진과 화산 (0) | 2016.04.19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61] 연구 가문의 시조들 (0) | 2016.04.05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60] 생태와 진화 (0) | 2016.03.29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59] 부계 불확실성 (0) | 2016.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