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닷컴 2016.04.05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나는 20년째 까치를 연구하고 있다.
관악산 기슭 서울대 교정에 사는 까치 개체군을 20세대째 관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하고 있는 긴팔원숭이 연구도 어느덧 10년차에 접어들었다.
2013년 7월 18일 4년 동안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제돌이를 제주 바다로 돌려보내며
나는 이 나이에 또 남방큰돌고래 장기행동 생태 연구를 시작했다. 한 100년쯤 할 요량으로.
대한민국에서 교수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 하나 있다. 바로 '논문 쪼개기 기술'이다.
대한민국에서 교수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 하나 있다. 바로 '논문 쪼개기 기술'이다.
한 편으로 쓰면 훨씬 영향력 있는 논문이 될 연구 결과를 최대한 여러 논문으로 쪼개어 겨우 부끄럽지
않을 수준의 여러 학술지에 흩뿌리며 산다. 숨이 긴 연구를 할라치면 해마다 받는 업적 평가에서 논문 편수가 부족해
불이익을 당하기 십상이고 자칫하면 연구비 지원도 끊길 수 있다.
명실공히 영국을 대표하는 과학자 다윈도 만일 이 땅에서 태어났더라면 절대로 위대한 학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식물 수정에 관한 그의 연구는 37년, 난초 연구는 32년이 걸렸고, 자연선택론을 소개한 그의 명저 '종의 기원'도
첫 스케치가 담긴 1835년 연구 노트로부터 24년이 지난 1859년에야 출간되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기초연구사업 시행 계획에 따르면 연구자가 스스로 최대 10년까지 연구 기간을 정할 수 있도록
'한 우물 파기 연구 지원'을 시작하겠단다. 이제야 드디어 우리 과학자들도 노벨 과학상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노벨상은 가치와 영향력이 인정된 탁월한 연구 가문의 시조들이 받는 상이다.
남의 연구 족보에 뒤늦게 끼어 든들 아무 소용이 없다.
2015년 중국 국적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투유유 박사의 개똥쑥 연구에서 우리는 분명히 보았다.
선진국에서 이미 하고 있어 실패할 확률이 적은 연구를 안전하게 따라 할 게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연구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는 걸. 족보 있는 가문은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장기간의 안정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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