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강천석 칼럼] 4·13 총선, 정치 정상화 계기 될 수 있다

바람아님 2016. 4. 16. 08:05

(출처-조선일보 2016.04.15 강천석 논설고문)

한국 정치 체제는 대통령 '中心制'라는 誤解 걷어내야
총선 결과 받아들이기 따라 대통령·국회·국민에게 도움돼

강천석 논설고문바람이 바뀌면 돛을 바꿔 달아야 한다. 
바람이 방향을 틀었는데도 옛 돛을 고집하면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심하면 뒤집히는 수도 있다. 정치는 바다에서 배를 모는 일과 흡사하다. 
바람의 방향을 정확히 읽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다.

4·13 총선은 뒤집힌 민심(民心)의 바다를 보여주었다. 
바다가 뒤집힌 다음 날 청와대 대변인은 두 줄짜리 공식 논평을 내놨다.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길 바란다. 
(이번 총선 결과는) 국민의 이러한 요구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국민 가운데 과연 몇 사람이 이 논평에 공감(共感)했을까. 이 상태에서 새 돛을 바꿔 달 수 있을까.

4·13 총선은 한마디로 대통령이 진 선거다. 
새누리당이 참패한 이유를 다섯 가지고 열 가지고 얼마든지 짚을 수 있지만 패인(敗因)을 거슬러 올라가면 
다 대통령 근처에 닿는다. 공천 희극(喜劇)과 국회 심판론 무대에서 새누리당은 서툰 조연(助演)에 지나지 않았다.

역대 최악(最惡)의 야당이라던 더불어민주당이 홈그라운드에서 내쫓기는 수모를 당하면서 어떻게 제1야당으로 올라섰을까. 
선거 승패는 상대가 실수한 반사(反射) 이익의 크기에 따라 판가름 난다. 
새누리당의 패인(敗因)이 더불어민주당의 승인(勝因)이다. 
국민의당이 이처럼 거뜬하게 제3당의 자리를 확보한 이유는 무었일까. 
대통령과 집권당의 실정과 행태에 화를 터뜨리면서도 더불어민주당을 믿지 못하는 유권자 심리가 국민의당에 
마음을 의탁(依託)하도록 만든 결과다.

각 당의 수지 타산(打算)보다 중요한 건 국민의 득실(得失)이다. 
과거 상식으로 보면 총선의 이런 결과가 정부의 마비·정국(政局)의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할 만하다. 
실제 그럴 위험도 크다. 대통령은 조기(早期) 레임덕의 덫에 걸렸고 집권당은 얼이 빠진 상태다. 
당(黨)의 중심으로 내세울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세월 8년 동안 제대로 된 국정 대안(代案)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국회선진화법을 바리케이드 삼아 노무현 대통령을 부끄럽게 만든 친노(親盧)와 김대중 대통령과 견줄 바가 없는 
비노(非盧), 반노(反盧) 세력이 패권 논쟁으로 지새우며 당 간판을 떼고 바꿔왔다. 
그들에게 국정 책임감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제3세력으로 솟아오른 국민의당은 안철수라는 새 모자 색깔과 더불어민주당의 옛 몸통에 걸친 유니폼 색깔이 다르다. 
무엇이 당의 진짜 색깔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3당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향해 각개약진(各個躍進)하면 불안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

왜 한국 정치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 정치 시스템을 대통령 '중심제'로 이해하고 국정을 운영해 왔다. 
대통령이란 앞바퀴가 굴러가면 나머지 바퀴들은 그냥 따라 와야 한다는 인식이다. 이건 심각한 오해(誤解)다. 
대통령 중심제의 발상지인 미국에선 대통령 중심제를 '대통령제(Presidential system)'라고 부른다. 
'중심'이란 단어가 없다.

미국 헌법 기초자(基礎者)들은 자기들이 뽑은 대통령이 왕(王)으로 변하는 위험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했다. 
국회의 입법을 통한 견제, 법원의 재판과 위헌(違憲) 심판을 통한 통제, 연방제에 의한 권력 분산이 
다 이런 고심(苦心)의 산물이다. 
대통령의 성공 여부는 국민 지지를 국회 설득의 정치력으로 바꿔 독자적 정치 공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대통령의 역량은 국회를 다루는 능력과 동일시(同一視)된다.

한국 대통령들은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선 정치력을 발휘하다가도 대통령이 되는 순간 정치력은 내려놓고 
'명령'과 '지시' 카드를 꺼내들었다. 총선 결과는 대통령 '중심제'라는 허상(虛像)을 깨뜨리고 정상적 '대통령제'로 
복귀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국회의 책임 의식 부재(不在)는 국회가 스스로를 헌정(憲政)의 주역이 아니라 조연으로 업신여기는 자기 비하(卑下) 현상과 
안팎 관계에 있다. 
야당에 집권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수록 책임 의식 대신 국민의 극소(極小) 부분을 대변해서라도 기득권을 지키면 그만이라는 
훼방꾼 심리를 길러낸다. 총선 결과에는 야당에 희망의 싹을 보여주면서 언제 그걸 거둬들일지 모른다는 경고를 
동시에 보내 책임의식의 성장을 재촉할 가능성도 담겨 있다.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날까지 대통령 권한을 100% 행사하겠다는 집념에 붙들리면 차기 권력 구도에 대한 부질없는 
잡념(雜念)을 부를지 모른다. 
그런 집념과 잡념은 경제 회생(回生)을 비롯한 국정 과제에 대처하는 근본적 장기(長期) 대책이 아니라 
단기적 즉흥(卽興) 처방에 마음이 흔들릴 위험을 함께 키운다.

4·13 총선 결과를 혼란의 입구(入口)로 만드느냐 정치 정상화를 향한 출구(出口)로 만드느냐는 
대통령과 국회와 국민의 역량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