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개혁정치를 뒤엎고 반동의 시대를 시작한 정순대비는 6만6000명의 노비를 전격적으로 해방시켰다. “공공재산을 횡령하거나 교묘한 이름을 붙여 백성에게 거두는 자는 유배하거나 금고시키고 사면할 때에도 풀어주지 말아라.” 순조 1년에 내려진 대비의 하교다. 대비의 수렴청정이 끝난 후 순조 역시 수령의 탐욕을 징계하기 위한 어사 파견과 흉년에 따른 백성 구휼 등 민생 정치에 힘썼다.
안동 김씨 천하를 만든 순원왕후 수렴청정기에도 왕후는 끊임없이 탐관오리의 수탈을 막으려 했다. “수령을 각별히 가려 뽑지 않는다면 내 손으로 사경을 헤매는 백성을 죽이는 것이다.”(헌종 2년) 백성의 현실을 알던 강화도령 철종은 삼정의 문란을 혁파하고자 개혁기구인 삼정이정청을 설치했다. “탐관오리의 해로움은 홍수나 맹수보다도 심해 백성을 수탈하고 파산시켜 가며 자신을 살찌우니….”(철종 5년)
주변을 보면 특별히 나쁜 사람은 흔치 않은데 왜 세상은 이럴까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세상의 비극은 꼭 악의 때문에 생겨나는 것만은 아니다. 철저하지 못한 선의는 악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