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와 '닫힌사회']
20세기 사회철학자 '칼 포퍼',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비과학적 주장이라고 비판
열린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대되는 의견 존중할 줄 알아야
최근 대우조선해양이라는 배를 만드는 기업이 회계 장부를 마음대로 조작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대요. 또 직원이 공금 180억원을 횡령했다는 사실도 알려졌어요. 상황이 곪을 대로 곪을 때까지 아무도 지적하지 않고
입을 꾹 닫고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지요.
전 국민의 분노를 산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이러한 꽉 막힌 태도가 얼마나 나쁜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요.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옥시는 사람들의 사망 원인이 살균제 제품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를 차일피일 미루다 비판을 받았어요.
문제점이 지적되었을 때 받아들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겠죠?
20세기 철학자 칼 포퍼는 명백한 잘못을 발견했을 때 자유롭게 비판이 오가는 사회가 옳다는 주장을 해
많은 지지를 얻었어요. 오늘은 포퍼의 철학에 대해 알아볼까요?
◇반증 가능성이란 무엇일까
포퍼의 철학 이론을 이해하려면 우선
'반증(反證·어떤 주장에 대한 반대되는 증거) 가능성이 있는 주장'과 '반증 가능성이 없는 주장'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야 해요.
사례를 들어볼게요. "까마귀는 까맣다"는 말은 진실일까요?
세계 어딘가에 노란 까마귀나 빨간 까마귀가 살 가능성도 있으니, 진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답니다.
그렇다면 "머리에 뿔 달린 유니콘이 있다"는 말은요?
우리가 잘 모르는 세상 어딘가에 뿔 달린 유니콘이 남몰래 살고 있을지도 모르니 역시 진실과 거짓을 따지기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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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정서용
그러나 이 두 문장에는 큰 차이가 있답니다. 포퍼에 따르면, "까마귀는 까맣다"는 주장은 과학적인 주장인 반면 "유니콘이 있다"는 주장은 비과학적인 주장이에요.
두 문장의 차이는 각 주장의 사실 여부를 가릴 증거를 누군가가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랍니다.
바로 포퍼가 강조하는 '반증 가능성'이지요.
"까마귀는 까맣다"는 주장은 누군가 탐험을 나서 노란 까마귀나 빨간 까마귀를 발견하는 순간 거짓이 되고 말아요.
노란 까마귀나 빨간 까마귀는 "까마귀는 까맣다"는 주장에 대한 반증이에요.
색이 다른 까마귀가 발견되면 국어사전에서도 "까마귀는 까맣다"는 설명이 지워질 거예요.
이렇게 반증이 확인되면 언제든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주장을 '반증 가능성이 있는 주장' 또는
'열린 주장'이라고 해요. 물론 아직까지 노란 까마귀나 빨간 까마귀와 같은 반증이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까마귀는 까맣다"는 주장이 진실로 받아들여지지만요.
칼 포퍼는 "이러한 반증 가능성이 있는 주장들이 과학적인 주장"이라고 설명했죠.
반대로 "유니콘이 있다"는 주장은 "반증 가능성이 없는, 비과학적인 주장"이라고 해요.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유니콘이 있다"는 주장의 반증, 즉 "유니콘이 없다"는 증거를 발견해서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에요.
유니콘이 없으면 없는 것이지 어떻게 그것이 없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겠어요?
이런 주장들은 무척 많아요.
"환웅이 여자로 변한 곰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단군신화도 반증 가능성이 없는 주장에 해당하죠.
어느 누구도 당시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갈 수 없으니, 곰이 사람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반증을 찾을 수는 없어요.
물론 비과학적인 주장들이라고 해서 모두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죠.
단군신화는 우리 선조가 곰을 숭배하는 신앙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해주는 귀중한 역사 유산이니까요.
하지만 현대에 단군신화 같은 비과학적인 주장을 한다면 안 되겠죠? 열린 비판을 가로막는 주장이니까요.
◇잘못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더 위험
포퍼는 "반증이 명백히 제시되었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꽉 막힌 태도는 비과학적인 주장 자체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주장했죠.
예를 들어 "무당이 굿을 하면 병이 낫는다"는 주장에 대한 반증은 얼마든지 많지만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이런 반증을
모두 무시하지요? 포퍼에 따르면, 이러한 막힌 태도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해요.
반대로 열린 주장들이 활발히 제시되는 '열린사회'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고쳐 더 살기 좋게 하고요.
지금까지 모르는 척하고 감췄던 문제점이 드러났을 때, 바로 고칠 수 있는 사회가 훨씬 건강한 사회니까요.
포퍼는 반증 가능성이 없는 주장들과 명백한 반증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통틀어 '열린사회를 가로막는 적'이라고
표현했지요. 문제를 덮으려는 태도는 포퍼가 보기에 가장 안 좋은 태도랍니다. 투명하게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열린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포퍼가 강조한 것은 바로 비판과 토론이랍니다.
어떤 주장이 무조건 진실, 무조건 거짓이라고 고집을 부릴 경우 토론은 불가능해요.
토론은 우리가 반증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을 때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어요.
자신이 내세운 주장이 지금 당장은 진실이라 해도 언제든 다른 사람들이 제시하는 반증에 의해 거짓으로 판명 날 수도
있다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필요해요.
다른 사람의 주장이 못마땅하더라도,
명백한 반증을 찾기 전까지는 진실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기본이고요.
우리 모두 열린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한다면, 사회 여러 문제가 곪아들 때까지 방치되는 일이 줄어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