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모니투데이 2014.12.03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좌빨, 종북, 수꼴, 극우, 보수, 진보. 그런데 이 구별에 관한 공인 기준은 없는 듯하다. 발언 몇 가지만으로 양쪽에서 병아리 감별하듯 용감무쌍한 단정을 내린다. 과장하면 이런 식이다. 어느 교수가 조선일보에 글을 쓰면 수꼴, 그 글 서두에 햇볕정책을 옹호하면 종북, 그런데 그 근거로 70, 80년대 경제성장으로 인한 대북 우위 확고화를 들면 극우, 경제성장 이면의 빈부격차와 인권침해를 지적하면 좌빨, 그런데 그가 대치동에 살고 있으면 강남 좌파, 알고보니 쪽방 사글세면? 글쎄다. 아마도 간명하게 원적지 기준설을 취하지 않을까. 호남인지 영남인지.
정말 우리나라에 공산주의자와 파시스트들이 스페인 내전 때처럼 대립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 양대 정당이 이념정당인가? 두 정당의 공약집을 표지 가리고 읽어서 구분하기란 펩시 챌린지 이상의 도전이다. 한 쪽의 인기공약을 곧바로 다른 쪽이 따라하는 일도 흔하다. 이념정당은 고사하고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 정도의 차이도 찾기 어렵다. 보수, 진보란 보통 정부의 역할, 복지정책, 조세정책 등의 차이로 구별한다. 그런데 우리 국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대체로 다수의견은 보다 많은 복지혜택은 원하되 세금은 더 내길 원치 않고 무슨 문제든 정부가 나서서 강력히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식이다. 서구 정치학자를 데려다 한국의 정치이념 분포도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시켜보면 난감해할 것 같다. '이념적으로 미분화 상태'라고 하지 않을까? 여기에 세대가 결합된다. 조용필 세대와 서태지 세대가 서로 울 오빠의 업적이 더 뛰어나다고 싸우는 꼴. 자기 세대의 우상이란 결국 자신의 청춘에 대한 자기애다. 객관적이기 어렵다. 울 오빠를 모욕하는 안티들에 대한 분노,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영웅에 대한 연민. 이런 정서의 문제가 결부되기 때문에 더 불타오른다. 미래에 대한 비전보다 과거에 대한 평가에 더 집착한다. 하지만 정작 현재 청춘들은 과거 우상에 대한 리스펙따위엔 관심이 없고 지금 핫한 빈지노, 안재현, 바비에 열광 중인 건 함정. 진학, 취업, 결혼…. 당장 자기 앞가림하는 것만도 전쟁인 미생의 청춘들에게 기성세대의 이념논쟁, 역사논쟁은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낸시 랭의 'OMG! 제가 친노종북이라고요? 전 저 낸시랭밖에 관심 없어요. 낸시는 친낸종낸이에요'라는 멘션은 시사적이다. 그러다보니 원자력발전소 건설, FTA 체결 등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다층적 갈등구조의 문제를 진영논리로 단순화해서 선악구도로 몰고가기도 하고 반대로 이념과 무관한 일상적인 문제에도 이념의 꼬리표를 붙이기도 한다. '애국가 3도 낮춰 부르기'를 어느 교육감이 추진했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현상은 참으로 흥미롭다. 우리 사회의 많고 많은 문제 중 어느 하나를 얘기하면 그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를 제기하는 저의부터 의심한다.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보수냐, 우리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진보냐고 묻는 사회에서 문제 자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생각한 것이온데…. 첫째, 진짜 필요한 토론과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각 방안의 장단점을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따지는 머리 아픈 과정을 '우리 편의 주장인지 적들의 주장인지'로 광속대체하는 반지성주의를 낳는다. 둘째, 삼인성호(三人成虎). 몇몇이 떠들어대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진다. 포털에 댓글 열심히 다는 소수의 민간인, 또는 군인들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념투쟁을 벌이다보면 마치 이 사회에 진짜 심각한 이념대립이 있는 것처럼 착시현상이 생긴다. 나치도, 볼셰비키도 같은 방법으로 주류사회를 흔들었다. 기성정당에 대한 피로도가 높을 때 극좌 또는 극우이념세력이 출현한다. 과거의 적군파. 현재의 티파티, 르펜…. '좌우자판기'를 철거해야 하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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