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09.10 신동흔 기자)
美 흑인 저널리스트 타네하시 코츠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혐오 문제… 흑인 아들에게 쓴 편지처럼 담아
"검은 몸, 이것이 네가 사는 세상… 비관보단 의식이 깨인 사람 되길"
세상과 나 사이|타네하시 코츠 지음|오숙은 옮김
열린책들|248쪽|1만3800원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1960년대 인권 운동을 거쳐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1960년대 인권 운동을 거쳐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월마트에서 비비탄 총을 들고 있던 열두 살 소년이 경찰 총에 맞아 죽고,
교통사고를 당한 뒤 도와달라고 이웃집 문을 두드리던 청년이 집주인 총에 맞아 죽는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멘토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의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
교수조차 자기 집 현관문 대신 뒷문으로 들어가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미국의 흑인 저널리스트인 저자 코츠(41)는 "당신이 흑인이라면, 당신은 감옥에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말콤X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열다섯 살 난 아들에게 미국 역사는 인종주의를 내면화해온 역사라고 말하면서
인종차별의 본질을 찾는 지적 여정을 이어간다.
마치 노래하듯, 힙합처럼 반복되는 운율에 섞여 흑인 피살 사건의 피해자와 60~70년대
흑인 인권 운동 영웅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힙합 평론가로도 활동하는 저자는 거리에서 생겨난 흑인들의 언어로 자신들의 몸에 새겨진 역사를
들려주고 있다. 내용은 직설적이다. "미국이라는 기계를 돌리기 위해 흑인들은 연료가 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우리의 몸을 가지고 사탕수수, 잎담배, 면화, 금을 만들어 냈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에서 검은 몸은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천연자원이다."
'흑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란 부제를 단 책에는 60년대 급진적 흑인 결사인 '블랙팬더' 당원이었던
'흑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란 부제를 단 책에는 60년대 급진적 흑인 결사인 '블랙팬더' 당원이었던
저자의 아버지와 아들까지 삼대(三代)가 등장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자주 혁대를 풀어 아들을 때렸다.
"내가 녀석을 때리지 않으면 경찰이 녀석을 때릴 거야." 저자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그는 아들이 비관하거나 공포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너를 가짜 기억 속에 키우고 싶지 않았다.… 내가 너에게 원했던 건 의식이 깨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거였다.
그래서 너에게 어떤 것도 감추지 않기로 결심했지."
이야기는 2인칭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그 옛날 동굴 속에 살았을 아버지들도 아들에게 세상의 무서움과 세상과의 투쟁이
곧 삶이라는 것을 이런 식으로 들려주지 않았을까. 검은 피부가 아닌 독자들도 '아버지'의 목소리에 공감하게 되는 것은
이 태고적부터 내려온 이야기 방식 때문인지 모른다.
저자는 미국 사회에서 자신이 그 무엇도 아닌 흑인이라는 사실을 곳곳에서 상기한다. 그는 언젠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러 간 극장의 에스컬레이터에서 백인 여자가 짜증을 내며 다섯 살짜리 아들을 밀치고 지나갈 때
"(아들의) 검은 몸을 보호하는 내 능력에 대한 나 자신의 불안감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지켜줘야 할 존재를 지켜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무력감. "언젠가 넌 어른이 되겠지. 그리고 난 너와 네 미래 친구와 동료들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간극으로부터 너를 구해줄 수 없을 거야." 아들은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익혀야 하고, 투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흑인의 아들들이 투쟁해야 하는 이유는 "투쟁이 승리를 안겨주기 때문이 아니라, 명예롭고 건강한 삶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국 내 흑인 인권 문제를 넘어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문제까지 의미를 확장한다.
저자는 차별과 증오, 폭력이 언어에 새겨져 있음을 안다. 저자 스스로도 그 증오를 통해 정체성을 지켜왔다.
"나 역시 약탈의 능력을 갖고 있었던 거야.… '깜둥이' '호모 새끼' '잡년'은 경계선을 밝게 비춰주고….
우리는 혐오하는 사람에게 이방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렇게 부족 내에서 우리를 확인받았지."
저자는 흑인뿐 아니라 백인들도 한때는 "코르시카인, 웨일스인, 메노파교도, 유대교도"와 같은 차별의 언어가 덧씌워진
존재들이었다고 말한다.
다만, 백인들은 흑인들 몸에 가하는 "호된 채찍질을 통해, 팔다리에 채운 사슬을 통해" 자신들을 하얗게 '세탁'했을 뿐이다.
최근 여성과 성적(性的) 소수자, 탈북자 등에 이르기까지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와 구별 짓기의 언어가 횡행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저자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투쟁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투쟁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너의 나라다. 이것이 네가 사는 세상이다. 이것이 너의 몸이다.
너는 이 모든 것 안에서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지난해 미국 사회에 인종 문제를 향해 가장 도발적인 주장을 던지며, 2015 전미도서상 등을 수상했고,
퓰리처상(논픽션 부문),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심에 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이 작년 여름휴가 때 가져간 책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함께 읽을 만한 책 : 우린 잘 있어요, 마석(마석가구공단 이주노동자 마을의 세밀한 관찰기) <서평> 고영란,이영 글/성유숙 사진/ 살롬의집 기획/ 출판사 클/ 2013/ 288 p 321.5-ㄱ367ㅇ/ [정독]인사자실(2동2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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