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8.02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는 흉기에 머리를 맞아서 기절한 19세기 미국인
엔지니어 행크가 어쩐 일인지 6세기 영국 아서 왕의 궁전에서 깨어남으로써 벌어지는 대혼란을 다룬 이야기이다.
행크는 어느 날 답답한 궁정을 벗어나 평민들의 삶을 살펴보러 가는데 아서 왕이 동행을 자청했다.
평민으로 변장한 두 사람은 시골길에서 붙잡혀 노예상인에게 팔린다.
그런데 아서 왕은 노예로 팔린 사실보다도 자기 몸값이 행크의 몸값보다 낮다는 사실에 더 경악한다.
최근 재벌가 오너가 운전기사에게 갑질한 사연이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우리 뉴스의 단골 메뉴인 '갑질'을 일삼는 사람들은 자기 회사의 하급자나 자기네 기업이 고용한 직원은 자신보다
하급 인간이라고 여기는 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부하직원을 하인처럼 부리고, 운전기사에게 거의 전과나 다를 게 없는
교통 법규 위반을 하도록 일상적으로 명령하고 마음에 안 들면 폭행도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만약 알몸으로 해적에게 포획되어 노예로 팔린다고 가정하면 귀한 분 중에 자기가 함부로 대하던 하급자보다
높은 몸값을 받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우리는 전통 유교 사회의 신분제로 인한 불평등 때문에 대다수 백성이 그리도 피눈물을 흘리지 않았는가.
실력보다 신분이 대접받는 사회는 허약하다. 결국 나라까지 망하지 않았는가.
천신만고 끝에 주권을 되찾고 나서도 각종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무수한 갈등을 겪었지만,
아직도 우리 지도층 일부의 의식은 자신이 특권층이라는 인식과 특권적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엘리트의 우월의식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까다롭고 무섭고 야박한 윗사람의 명령은 철저히 받들면서도 자기를 인격체로 대하는 사람의 지시는 어물쩍 넘기는
하급자도 있다. 기업에서 상급자가 직원을 맹훈련시킬 필요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급자가 아랫사람의 취약한 입지를 이용해서 모욕을 주면서 노예처럼 부리는 게 사회적으로 더 위중한 문제다.
존 브래드퍼드라는 16세기 영국 목사는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인들을 보고 "하나님의 은총이 없었더라면 내가 저기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잘난 게 아니라 겨우 신의 은총으로 목숨 부지하는 것이란 겸손을 지닌다면
오늘 누리는 '은총'을 잃을 처신을 삼갈 수 있을 텐데.
아더왕과 양키/ 마크 트웨인/조애리 미래사/ 1995/ 428 p 843-ㅌ95아/ [정독]어문학족보실서고(직원에게 신청)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마크 트웨인 김영선/ 시공사/ 2010/ 543 p 808-ㅅ374식-7/ [정독]어문학족보실서고(직원에게 신청) |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
[1] 영국 고립주의의 뿌리(2016.06.21) [2] 미국을 다시 백인의 나라로?(2016.06.28) [3] 民辯, 21세기 한국의 돈키호테들(2016.07.05) [4] 여자 목숨, 파리 목숨(2016.07.12) [8] 최고 지도자의 국민 감동 연설(2016.08.09) [9] 아직도 무궁무진한 6·25 비사(2016.08.16) [10] 스포츠의 축복(2016.08.23) [11] 부르키니의 여인들(2016.08.30) [12] 역사의 더딘 전진, 빠른 후퇴(2016.09.06) |
'人文,社會科學 > 책·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은 연료로 세운 '화이트 아메리카'… 여전히 흑인은 이방인 (0) | 2016.09.11 |
---|---|
[당신의 리스트] '잡지 왕국'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가 즐겨 보는 잡지 5 (0) | 2016.09.10 |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12] 역사의 더딘 전진, 빠른 후퇴 (0) | 2016.09.06 |
[經-財 북리뷰] 스한빙 경제대이동 (0) | 2016.09.04 |
결혼하고 알았다, 사랑은 열정보다 기술이란 걸 (0) | 2016.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