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01.06 전병근 기자)
스한빙 경제 대이동
스한빙 지음|차혜정 옮김|청림출판/ 2013/ 487쪽/ 1만9800원
- 321.97-ㅅ738ㄱ/ [정독]인사자실(2동2층)
“석유를 통제하는 자가 모든 나라를 통제할 것이다.
식량을 지배하는 자가 인류를 지배할 것이다.
화폐를 지배하는 자가 전 세계 경제를 지배할 것이다.”
저자는 고속성장이 낳은 가치관 왜곡까지 거론한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말이다.
올해 나이 90인 이 불세출 전략가에 따르면 세계를 좌우하는 3대 무기가 석유와 식량, 달러다.
중국의 주목받는 논평가인 저자 역시 같은 전제 위에서 세계 경제 대국(大局) 한 판을 풀어놓는다.
공정한 해설이라기보다는 수세에 처한 모국을 향한 애정 어린 훈수에 해당한다.
미국의 파상적인 공세 뒤에 깔린 숨은 포석은 무엇인지, 그에 맞서 중국이 파국을 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꼼꼼히 열거한다.
◆ 통화 과잉 시대의 화폐 전쟁
지금 세계는 통화 과잉에 빠져 있다는 진단이 저자의 출발점이다.
◆ 통화 과잉 시대의 화폐 전쟁
지금 세계는 통화 과잉에 빠져 있다는 진단이 저자의 출발점이다.
돈은 사방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생산성 증가는 거북이 걸음이다.
2002년 이후 기축통화 규모 증가율은 10%가 넘었지만 세계 GDP 성장률은 고작 2~5%에 그쳤다.
반면 화폐의 가치를 떠받치는 자원은 갈수록 줄고 있다. 발빠른 미국이 신에너지 개발에 나섰지만 대체 가능성은 요원하다.
결국 ‘자원이 왕’인 시대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남은 것은 ‘거품 형성, 자국의 거품 유지와 파괴,
타국의 거품 붕괴를 통한 위기 전가, 이를 통한 폭리 챙기기’의 순서로 진행되는 대결, 화폐 전쟁이다.
‘환율 전쟁’으로도 불리는 화폐 전쟁이란 환율 변동을 통해 다른 나라의 부를 잠식하는 것을 말한다.
‘환율 전쟁’으로도 불리는 화폐 전쟁이란 환율 변동을 통해 다른 나라의 부를 잠식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미국이야말로 화폐전쟁의 ‘대가’라 부른다.
세계 최고의 금융전문가군과 전략가 집단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달러가 기축통화인 것을 활용해 자국 경제 조정의 진통을 전 세계에 분담시킨다.
‘미국’이라고 하지만 주축은 월가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 때 유로존 공략에 나선 것도 이들이었다. 월가의 큰손들은
유로존의 부채 문제를 들춰내 세계의 이목을 딴 데로 돌렸다. 덕분에 미국은 경제 회복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저자는 월가의 다음 목표가 중국 위안화라고 본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저자는 월가의 다음 목표가 중국 위안화라고 본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압박해 수출형 제조업의 대거 파산을 유도한다. 그 후 위안화 절하를 통해 중국의 거품을 뺀다.
이를 틈타 중국 우량 기업들을 사들이고 위안화 자산과 자원을 사들인다.
저자는 2012년과 2022년을 전후해 중국이 고비를 맞을 거라 예상한다.
◆ 다가오는 석유 대전
또다른 파도는 ‘석유 대전’이다. 발화점은 자원의 보고이자 전략 요충지인 중동.
◆ 다가오는 석유 대전
또다른 파도는 ‘석유 대전’이다. 발화점은 자원의 보고이자 전략 요충지인 중동.
미국은 이미 중동 민주화를 통해 이 지역을 평정해가고 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서 시작된 ‘색깔 혁명’은 이집트, 레바논, 리비아에 이어 시리아까지 갔다.
미국은 다음 목표인 이란과의 결전에 대비해 석유 수입원을 다변화하고 있다. 동시에 바이오연료 산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해 에너지 위기에 대비한다. 이라크 철수도 이란 공격에 대비한 포석이라고 저자는 본다.
반면 중국은 이 전선에서도 취약하다. 원유의 대외 의존도가 이미 2009년에 경계 수위인 50%를 넘었다.
반면 중국은 이 전선에서도 취약하다. 원유의 대외 의존도가 이미 2009년에 경계 수위인 50%를 넘었다.
수입원도 주로 걸프 지역과 아프리카에 집중해 있는 데다 걸프 지역 수입국 중 이란을 뺀 대부분이 미국 우방국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태평이다. 석유 저장량은 한정돼 있는데 자동차 증가 속도는 세계 최고다. 중국의 석유업계를 국영기업인
페트로차이나와 시노펙이 독점하고 있는 것도 민간 유전 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취약한 중국…정치제도의 문제
밖에서는 중국의 약진을 경외, 심지어 두려움의 눈으로 본다.
◆취약한 중국…정치제도의 문제
밖에서는 중국의 약진을 경외, 심지어 두려움의 눈으로 본다.
하지만 저자는 중국 경제가 빛 좋은 개살구라 진단한다.
GDP 세계 2위의 화려한 실적도 거품에 불과하다는 말도 한다.
개혁개방 이후 30년 간 값싼 노동력에 기대 고오염·고소모의 제품 영역에서 서방을 압도해 고속 발전을 이뤘을 뿐이라는 것.
하지만 곳곳이 취약하고 거품 투성이다. 가령 중국은 GDP 성과를 고위층 공무원의 인사고과에 반영한다.
투자가 맹목적일 수밖에 없다. 부패도 속출한다.
서방 선진국의 정책 실책률은 5% 내외인데 비해 중국은 30%에 달한다.
2010년 국유기업의 누계영업이익은 2조 위안인데 국가에 상납한 배당금은 겨우 5%였다.
대다수 국민은 저효율, 저임금, 저보장의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저자는 숱한 경제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체제 문제에서 비롯한다고 지적한다.
막스 베버가 말한 ‘정치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의 문제다.
막스 베버가 말한 ‘정치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의 문제다.
권력과 시장이 결합해 형성된 ‘정치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부가 소수 권력자들 손에 집중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 결과
“서방 세계는 경제성장이 3%, 심지어 1%만 돼도 국민 대부분이 중산층으로서 자존감을 유지하는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중국은 8%라고 해도 국민이 누리는 성과는 극히 제한적이다.”
저자는 고속성장이 낳은 가치관 왜곡까지 거론한다.
“오늘날 중국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을 잃어버렸다. 금전을 좇는 것 외에 그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며,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헤맨다. 이런 사람들에게 지속 가능한 발전의 동력이 어디 있겠는가?”
이 문제 역시 특정 계층의 권력이 제약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고 본다.
“많은 사람이 정부 부문에 가서 일을 할 때는 안색을 살피고 돈을 쓰고 밥을 사며 청탁을 해야 한다.
이러한 ‘관시(關係)’ 문화를 조금만 소홀히 해도 일이 틀어진다.
결국 전체 사회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부패의 만연을 더욱 가중시킨다.”
◆ 무엇이 강국을 만드는가
저자는 석유전쟁, 식량전쟁, 금융전쟁은 물론 군사전쟁도 결국은 체제 싸움이라고 말한다.
◆ 무엇이 강국을 만드는가
저자는 석유전쟁, 식량전쟁, 금융전쟁은 물론 군사전쟁도 결국은 체제 싸움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우위는 우수한 제도에서 나온다.
미국은 자원 배치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자유시장 체제를 통해 세계 자원을 조정·배치해 다른 나라들로서는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끌었다. 미국에 대한 저자의 ‘부러움’은 곳곳에서 표출된다.
“미국의 음모론을 비난하고 원망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들의 음모론이 번번이 통하는 것은 우선 그들에게는 세계가 인정한 보편적인 가치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보편적 가치관 덕분에 미국 국민들은 부자와 가난한 자, 강자와 약자를 막론하고 소속감과 존엄성을 보장받는다.
중국의 가치관을 더 많은 사람이 인정할 때 중국도 더 많은 친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월가나 신용평가기관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과 자기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별개라고 말한다.
“문제만 나타나면 모든 잘못과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면서 반성과 시정은 뒷전인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경향은 미래 화폐 전쟁에서 중국에게 불리한 국면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문제작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문제작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1997)’을 연상시킨다.
이제 중국에도 ‘팍스 아메리카나’ 시절 세계 경영의 밑그림을 그렸던 전략가 수준의 지식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음을 뜻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책에 인용된 저서들 대부분이 서방의 고전들, 특히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것이란 점.
칼 마르크스나 레닌은 물론, 이매뉴얼 왈러스틴 같은 사회주의 이론가는 어디에도 없다.
G2 시대, 미국과 중국의 식자들이 서로서로 체제를 곁눈질하고 저울질하는 최근의 현상도 흥미롭다.
G2 시대, 미국과 중국의 식자들이 서로서로 체제를 곁눈질하고 저울질하는 최근의 현상도 흥미롭다.
뉴욕타임스의 국제 문제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을 비롯한 미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최근 들어 미국 시스템의 불합리와
비효율을 탄식하며 ‘중국 모델’을 재조명하는 분위기다.
반면 이 책의 중국인 저자는 오히려 미국 체제의 장점을 부러워하며 ‘중국 모델’의 한계를 까발긴다.
중국 내부의 논의도 이제 이 정도 자기 비판 쯤은 포용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걸까.
이 책에서 말하는 석유 대전, 식량 전쟁, 화폐 전쟁 시나리오의 진위 여부는 학문적 검증의 범위를 넘어선다.
이 책에서 말하는 석유 대전, 식량 전쟁, 화폐 전쟁 시나리오의 진위 여부는 학문적 검증의 범위를 넘어선다.
어차피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밑그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진짜 미덕은 주기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그저 그런 음모론 시각을 넘어 세계 정치경제의 복합적인 동향을
비교적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데 있다. 나아가 안에서 본 중국 현실의 문제점도 솔직하게 진단하고 개선책을 제시한다.
그가 왜 중국의 일반 독자들 사이에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 독자들이 읽어야 할 이유는 뭔가. 두 가지다.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 독자들이 읽어야 할 이유는 뭔가. 두 가지다.
첫째, 일종의 엿보기 이득. 중국의 유력 언론인이 세계 판도를 읽는 그림을 들여다 보면서 우리 나름의 구상을 그려볼 수 있다.
나아가 중국 내부의 고민을 통해 우리 문제도 함께 반추해 볼 수 있다.
글로벌 경제 시대, 당면한 문제는 결국 비슷하다.
저자가 말하는 정부 주도의 경제 성장의 허와 실, 제도를 지탱하는 가치의 중요성 같은 진단은
우리로서도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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