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1.25 강천석 논설고문)
'대통령 中心制'에서 '中心'이 허물어졌다
前任 대통령 全員 추락… 車體 결함·운전 미숙결합 탓
박근혜-최순실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누굴까.
그것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직책(職責) 자체다.
탄핵이 마무리돼 다음 대통령으로 누가 선출되든 그는 박근혜 시대 이전 대통령이 누렸던 권위(權威)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그만큼 이번 사태는 대통령 자리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중심(中心)'이 파괴됐다.
삼권분립 원칙 아래 대통령은 행정부의 장(長)으로 입법부·사법부의 장과 동렬(同列)에 선다.
이런 대통령이 입법부·사법부의 장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는 것은 대통령에게 두 가지 특별 지위(地位)가
부여돼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대외 관계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元首) 지위이고 다른 하나는 헌법이 대통령에게 '국가 독립, 영토 보존,
국가 계속성(繼續性)과 헌법 수호 책임'을 맡긴 데서 비롯된 국정 최고 책임자 지위다.
우리의 대통령상(像)은 이 두 가지 특별 지위 위에서 형성됐다.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체모(體貌)를 손상하는 모습은 생각할 수 없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놓이더라도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거짓말을 한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다.
대통령 권위의 토대는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믿음이다. 믿음의 발판이 무너지면 대통령 권위는 붕괴한다.
헌법은 대통령 탄핵 사유를 '대통령이 직무 집행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라고 특정(特定)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국민 신뢰가 붕괴하는 순간 국민 마음속에선 탄핵 과정이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탄핵도 민주주의를 배우는 교실이라는 말은 배부른 소리다.
탄핵이란 단어를 입에 올릴 때 이미 나라는 쪼개진 거나 한가지다. 쪼개진 나라는 탄핵 과정에서 또 한 번 분열한다.
탄핵이 끝나면 후폭풍(後爆風)이 몰려온다.
탄핵 후유증은 파편(破片)처럼 살에 박혀 날이 궂을 때마다 삭신을 욱신거리게 만든다.
그래서 미국 같은 초강대국(超强大國)도 탄핵 이외의 길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초(秒)읽기에 들어간 닉슨 대통령이 맞은 마지막 방문자는 같은 공화당 출신 상원 의원들이었다.
그들에게 탄핵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는 통고를 받은 닉슨은 자진 하야(下野)를 선택했다.
대통령이 대통령 자리가 무엇인지 알기만 했어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야당 지도자들에게 나라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있었더라도 이 자리는 피할 수 있었다.
무지(無知)하고 무책임(無責任)한 사람들이다.
그들 마음의 바닥에는 '이래도 나라는 미국이 지켜주겠지' 하는 부끄러운 식민지(植民地) 의식이 깔려 있다.
구멍 난 헌법이 위기를 심화(深化)시켰다. 헌법 속 대통령은 얼핏 보면 '전능(全能)한 독재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무력(無力)한 독재자'일 따름이다. 국회와 같이 가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국회선진화법'은 위기의 최종 해소 장치인 '다수결 원리'까지 불구(不具)로 만들었다.
'상대와 협상에 나설 용기'와 '상대에게서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대통령의 필수 요건이다.
대통령 자리를 기웃거리는 사람 가운데 그런 사람은 눈을 씻어도 찾을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은 인사권과 수사기관 지휘권을 흉기(凶器)처럼 휘둘렀다.
헌법과 법률에 합리적 제동(制動)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난폭 운전은 계속될 것이다.
현행 헌법에서 5년 임기 대통령과 4년 임기 국회는 톱니가 망가진 톱니바퀴처럼 덜컹거리며 돌아간다.
정치력 없는 대통령이 재임 1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와 만나면 그 순간부터 조기(早期) 레임덕 현상에 허덕인다.
'대통령 권한대행'과 '책임 총리제'를 둘러싼 혼란도 헌법에 국민이 직접 선출한 부통령 조항이 있었더라면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었다.
다음 대통령은 '대통령 중심제'에서 '중심'이 망가진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는다.
권위가 붕괴된 대통령은 엊그제 대통령을 거리에서 몰아낸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국민을 상대해야 한다.
오늘의 촛불이 내일의 호랑이다. 한번 숲을 벗어난 호랑이는 쉽게 숲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다음 희생자는 다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5년 단임제' 운전석에 누가 새로 앉든 사정은 바뀌지 않는다.
'헌법이 무슨 죄(罪)가 있느냐'는 호언장담(豪言壯談)은 그래서 더 위험하게 들린다.
전임(前任) 대통령 6명 전원의 추락 사고가 운전 미숙 탓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누가 혼자 타는 자가용이 아니다.
나라를 이끌려면 '차체(車體) 결함'과 '운전 미숙' 정도는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한 야당 대표는 탄핵에 공동 보조(步調)를 취하겠다는 여당 인사조차 '부역(附逆) 집단'으로 몰았다.
쪼개진 나라를 또 한 번 쪼개는 말이다. 탄핵 이후(以後)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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