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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30] 마오리족과 모리오리족

바람아님 2013. 8. 13. 08:16

(출처-조선일보 2009.10.30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뉴질랜드에서 동쪽으로 약 800km 떨어진 채텀 제도에는 모리오리족이 주변의 다른 어느 지역과도 동떨어져서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1835년에 느닷없이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공격을 받아 인구가 거의 사멸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노예로 전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마오리족 모리오리족은 수백 년간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으나 19세기 후반에 우연히 바다표범 사냥을 하는 

배 한 척이 채텀 제도에 도착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 되었다.

동쪽 먼 바다에 섬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는 생선과 조개와 열매가 풍부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싸울 줄도 모르고 무기도 

없다는 소식을 접한 마오리족 사람들 수백 명이 그 섬을 정복하기 위해 몰려간 것이다. 

그해 11월 19일, 뉴질랜드 북섬의 타라나키 지방 출신 사람들 500명이 총·곤봉·전투용 도끼로 무장한 채 이 섬에 들이닥쳤고, 

다시 12월 5일에 400명이 또 몰려왔다. 마오리족은 몇 패로 나뉘어 촌락들을 누비고 다니며 모리오리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저항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여서 잡아먹었다.


이 사건이 더욱 비극적인 것은 원래 두 종족이 뉴질랜드에 같이 살던 하나의 민족이라는 데에 있다. 

1500년경에 마오리족 중 한 무리가 채텀 제도로 와서 모리오리족이 된 것이다. 두 종족은 한 뿌리에서 나온 사람들이건만 

오랫동안 상이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동안 너무나도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인구가 많고 경쟁이 심하다 보니 기술이 발전하고 복잡한 정치 조직을 발전시켜 나갔고, 

무엇보다도 지극히 호전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반면 채텀 제도에서는 자원은 풍부하되 소수의 사람만 살 수 있는 여건이었으므로, 그들의 조상 누누쿠가 만들었다는 

율법에 따라 전쟁과 살육을 금하고 평화롭게 살며, 남자 신생아의 일부를 거세하는 방식으로 인구를 조절했다. 

결과적으로 한쪽은 점점 복잡한 조직으로 발전하고 다른 한쪽은 점점 더 단순한 조직으로 후퇴해 갔다.

이 사례는 하나의 민족이 갈라져서 상이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다르게 변화해 갈 수 있는지를 웅변한다. 

반세기 넘게 남북으로 갈라져 살아온 우리 민족도 극복하기 힘들 정도의 이질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