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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1]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바람아님 2013. 8. 11. 12:30

(출처-조선일보 2009.06.15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올해는 찰스 다윈이 탄생한 지 200년이자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년이 되는 해라서

세계적으로 '다윈의 해'를 기념하는 온갖 행사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딱 떨어지는 숫자의 해를 기념할라치면 꼭 기념해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6월 16일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도덕감정론〉이 출간된 날이다. 그는 우리에게 〈국부론〉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본인은

〈도덕감정론〉을 자신의 최고 역작으로 꼽았다고 한다.

〈국부론〉보다 무려 17년 전에 쓰인 이 책에서 그는 이미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개념을 가지고

부의 분배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구성원 각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되 남과의 공감(sympathy)을

잃지 않는 사회가 바로 도덕적인 사회라고 역설했다.

그런 그가 훗날 〈국부론〉에서는 사뭇 철저하게 이기심(self-interest)을 강조하자 혹자는 그가 일구이언(一口二言)의

우를 범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인 내게 스미스는 결코 이부지자(二父之子)가 아니다.

그의 도덕철학은 하나도 버릴 것 없이 그대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개념으로 이어진다.

꿀벌 사회의 일벌들은 자기 영토를 침입한 적의 몸에 가차없이 독침을 꽂는다.

그러나 독침 표면의 날카로운 돌기들 때문에 결국 일벌은 독침과 함께 내장의 대부분을 적의 몸에 남겨둔 채 날아가고,

그 결과 두어 시간 후면 목숨을 잃고 만다.

사회를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일벌의 자기희생 행동은 실제로 다윈의 자연선택론에 가장 큰 도전이었다.

먼 훗날 유전자의 존재를 알고 난 다음에야 우리는 이 같은 이타적 행동도 유전자의 전파에 이득이 되기 때문에

진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결국 이기적 행동이란 말이다.

스미스는 우리에게 '현명한 이기주의자'가 되라고 가르친 것이다.

지금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는 아마도〈도덕감정론〉은 덮어두고 〈국부론〉만 탐독한

영악한 수전노들이 저지른 일이리라.

그런가 하면 박세일·민경국 교수의 노력으로 1996년에야 겨우 번역된 〈도덕감정론〉이 이미 절판되어 버린

우리나라의 상황은 더욱 암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