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08.1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미래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연구의 대상이 미래이다 보니 누구도 완벽하게 실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원천적인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어느 미래학자가 미래에는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고 하자. 여러 해가 지나 온갖 종류의 로봇이 개발되었으나 인간을 지배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자 사람들은 그 미래학자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래학자는 여전히 할 말이 있다. "기다리시라니까요. 언젠가 '미래'에는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니까요."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연유로 미래학은 철저하게 과학이어야 한다. 직관적인 예언이 아니라 정확한 미래 시점을 짚고 현재 시점에서 가용한 모든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다양한 대안적 예측들을 제시하는 학문이어야 한다. 최근 각광 받고 있는 빅데이터(big data) 연구는 그 자체가 미래학이며 제대로만 한다면 실로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교훈은 이미 벌어진 과거에만 해당될 뿐, 미래 예측에 관한 한 무지는 거의 확실하게 독이 될 수밖에 없다.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미래를 Adventus(到來)와 Futurum(未來)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미래학에서 다루는 미래는 당연히 Futurum이지만, 종교는 우리에게 Adventus의 위용을 설파한다. 우리는 흔히 과거가 현재라는 찰나를 거쳐 미래로 흘러간다고 생각하지만, 종교는 신이 미리 정해둔 미래가 현재로 강림한다고 가르친다. 컴퓨터과학자 앨런 케이(Alan Kay)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발명하는 것"이라 했지만, 미래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도자란 우리를 좀 더 밝은 미래로 이끌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리더(leader)는 책을 많이 읽고(reader), 깊이 생각하여(thinker),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사람(trailblazer)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향악단의 지휘자는 청중에게 등을 돌려야 하지만 국가의 지휘자는 국민의 눈을 들여다보며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정해진 미래든, 만들어갈 미래든, 그 미래가 이 암울한 현재보다 반드시 밝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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