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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 남산골 한옥마을

바람아님 2016. 12. 8. 01:40

 

 


[사진속] 남산골 한옥마을

 


지난 27일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던 남산골공원을 찾았다.

다음날부터 더욱 추워지고 미세먼지가 강화 된다는 말에 흐린 날씨에

불구하고 집을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충무로역을 나오자 마자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렸다.

그런데도 중국인 관광객이 상당히 많다. 한참을 들어가는 입구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조금 잦아진 틈을 이용해 한옥 마을 투어에 나섰다.

이런날 방수가 안되는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것은 다소 무리였지만 점점 그치고 있어

천우각이 있는 연못 옆으로 돌아 옥인동 윤씨 가옥을 시작으로 대가집 전통가옥을 둘러 

보았다.


그중 관훈동 민씨가옥운 주말 전통 혼례장으로 이용되는데 혼례식이 3시에 있다 하여

기다리지 못하고 마지막 남은 단풍을 보기 위해 남산 순환길로 올라 갔다. 

남산골 공원에는 한옥마을 말고도 여러 시설이 있으나 다음기회에 볼 생각이다.

비온뒤라 구름이 많이 끼어 어두운 상태로 노출을 정상 보다 2~3스톱 높게 주었다.



[이미지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크기(1700x955)를 보실수 있습니다][남산골 한옥마을 2016-11-27]







[이곳에 한옥마을을 조성하며 옮겨온 가옥은 총 다섯채로 각각 가옥의 유래와 설명은 한옥 마을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옥인동 윤씨(尹氏) 가옥

  종로구 옥인동 47-133번지, 복원

 

  이 집은 대략 1910년대에 지었다고 알려진 옥인동 47-133번지 가옥을 그대로 본떠서 새로 지은 것입니다. 

  당시 옥인동 47번지 일대 너른 땅은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1894~1966)의 큰아버지 윤덕영(1873~1940) 

  소유였습니다. 그는 이 집 근방에 20여 채에 달하는 집을 짓고 일가붙이와 모여 살았는데, 그 가운데 서양식으로 지은 사위집

  (옥인동 박노수 가옥,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1호)과 윤덕영의 측실이 거처했던 옥인동 47-133번지 가옥만 남아 전합니다.









  제기동 해풍부원군(海風府院君) 윤택영(尹澤榮) 재실

  동대문구 제기동 224번지, 이전·복원

 

  이 가옥은 조선 제27대 순종의 장인 해풍부원군 윤택영이 그의 딸이 동궁(東宮)의 계비로 책봉(1906)되어 창덕궁에 들어갈 때 

  지은 집으로 전합니다. 제기동 224번지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습니다. 이 집의 평면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元(원)'자 

  모양인데 제일 윗 터에 사당을 배치하고 그 아래 터에는 몸채를 두었습니다.

  사당은 1960년 4·19혁명 때 불에 타서 없어졌던 것을 복원하였으며, 사당 앞에 두 단의 석축(石築)을 쌓아 화계(花階)를 구성

  하였습니다. 몸채는 일고주오량가(一高柱五樑架)이고 앞채는 삼량가(三樑架)입니다. 장대석(長臺石) 기단(基壇)과 방형초석

  (方形礎石), 그리고 일부에는 굴도리를 사용하여 집의 격식(格式)을 높였습니다.











  관훈동 민씨(閔氏) 가옥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 이전·복원

 

  이 집은 민영휘(閔泳徽,1852~1935)의 저택 가운데 일부였습니다. 그는 관훈동 일대 너른 땅에다 집을 여러채 짓고 일가붙이와

  함께 살았는데, 옛 터의 위치는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였습니다. 원래 집터에는 안채와 사랑채 외에도 별당채와 대문간채, 

  행랑채 같은 집채가 있었다고 전하나 나중에 소유자가 바뀌면서 안채와 여기에 연결된 중문간채만 남기고 모두 헐려졌습니다. 199   8년 남아있던 안채를 옮겨 지으면서 철거되었던 건넌 방 쪽을 되살렸고, 사랑채와 별당채를 새로 지었습니다. 

  전체 배치는 사랑채 뒤로 안채와 별당채를 구성하였으며 담과 문으로 적절하게 공간을 나눴습니다.









  삼청동 오위장(五衛將) 김춘영(金春營) 가옥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 이전·복원

 

  이 가옥은 조선말기 오위장을 지낸 김춘영이 1890년대 지은 집입니다.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

  습니다. 'ᄃ'자형 안채에 'ᅳ'자형 사랑채를 연결시켜 ('ᄃ') 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안채 대청은 오량가(五樑架)이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삼량가(三樑架) 입니다.

  판대공(板臺工)을 사용하고 홑처마로 꾸미는 등 전체적으로 평민주택의 양식을 보이고 있지만, 안방의 뒤쪽 벽, 즉 길가에 면한

  부분에 사괴석(四塊石)과 전돌(塼石)을 사용하여 화방벽(火防壁)을 쌓아 집의 격조를 더 높인 것이 특징입니다.




전통가옥은 하나 같이 가옥의 앞부분 보다 뒷부분에 많은 공간을 갖이고 있는게 특징적이다.

아마도 이는 바깥 출입이 잦지 않은 아녀자들의 활동 공간을 배려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한옥은 실용성에 주안을 두되 미학적인면도 돋보이는 건축 양식이다.

다음번에는 날씨 좋은날 방문해 실용성과 미적인면을 중점적으로 담아 볼 생각이다. 

저문을 나서면 공원 후문을 통해 남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Inch'allah